[동지에게] 분갈이를 할 때입니다, 바뀜과 만남을 위하여!
분갈이를 할 때입니다
- 바뀜과 만남을 위하여 -
같은 해, 두 번째로 맞는 당직선거입니다. 안타까우시죠? 답답하실 겁니다. 오랜 동무들과 헤어져 허탈한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도 책임감과 반성하는 마음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힘겹더라도, 우리의 걸음을 멈출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20년째 살고 있는 곳, 처음 당 활동을 시작한 곳, 처음 당원동지들을 만나기 시작한 곳, 경기도당 위원장 선거에 나선 것입니다.
우리당에 필요한 것을 고민하기에 앞서
우리사회에 절실한 것이 무언지 생각해봅니다.
요즘 날씨가 참 좋습니다. 불과 얼마 전의 무더위를 기억하십니까? 또 그전의 가뭄을 기억하십니까? 벌써 오래된 일처럼 들리지요? 몸이 먼저 잊었을 겁니다. 그런데 무더위가 심할 때에 시원한 비라도 쏟아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한창 가뭄일 때에도 차마 비를 바라지 못했습니다. 저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분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희망버스가 다녀온 곳들이기도 하지요.
세월호 참사, 500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아무런 소식도, 새로운 밝혀짐도 없습니다. 쌍용자동차 김득중 지부장의 단식이 열흘을 훌쩍 넘기고 있습니다. 강이 죽어가는 이 나라, 얼마 전에는 설악산에도 케이블카를 설치하기로 하였습니다. 각지의 국립공원으로 확산시킬 모양입니다. 전쟁 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더니 한미연합군, 사상 최대 화력으로 사격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군사훈련을 참관하고 중국에서는 열병식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어디에선 돈 때문에 사람들이 죽고, 어디에선 돈을 위해 자연을 죽이고, 어디에선 그 모두의 합보다도 많은 돈을 공중과 흙더미 위에서 폭발시키고 광장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돈 얘기가 나왔으니 좀 더 해볼까요. 얼마 전에 30대기업 임원들의 평균연봉이 공개되었습니다. 임금피크제를 시행해야 신규채용을 늘릴 수 있고,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리면 기업이 어려워진다며 6030원으로 묶고,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를 일삼는 나라의 대기업 임원들의 연봉은 또 얼마나 우리를 좌절케 하였습니까. 1년에 83억 3천만 원을 받는 삼성전자 임원 한 사람의 연봉이면 최저임금 1만원이라도 적용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이 3~400명은 생겨납니다. 단순히 계산하면, 삼성전자 임원 수가 1000명 남짓이니 초고액 연봉을 반으로 줄일 경우에 최저임금 1만원 일자리가 20만 개, 정규직 수준의 일자리는 10여만 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가져가고 있습니다. 20년 전인 1995년에는 30%에 가까웠고(29.2%), 2005년엔 40%로 더 커지더니(37.8%), 이제는 절반에 육박합니다. 반면 국세청 자료에 의하면 연소득 2000만 원 이하 노동자가 47.5%에 달합니다. 그러니까 전체 노동자들 중 절반의 월 소득이 166만 원 이하입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비정규직은 한 달 평균임금이 143만 5천원입니다. 더 기막히게도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씩 일하고 100만원 남짓 받는 사람들, 우리, 그리고 바로 내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일터와 집터를 잃어 분하지만 힘없는 이들은 높고 좁은 크레인으로, 철탑으로, 망루로, 전광판으로, 그리고 공장 굴뚝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억울한 사람들을 하늘 가까이 높은 곳으로 밀어 올리고, 약한 사람들은 바닥보다 아래로 잠기게 합니다. 그 극한의 공동경험이 ‘참사’라는 역사적 용어로 기록된 ‘용산’과 ‘세월호’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도시의 가난한 생활이란 것도 차츰 높이 오르다가 어느 순간엔 처음보다 더욱 아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절망스럽지요. 우리는 실패했습니까? 좌절해야 합니까? 체념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분노해야 합니다. 분노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단언컨대 절망, 패배, 실패의 감정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없었습니다. 스페인의 ‘로스 인디그나도스’, 즉 ‘분노한 사람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한국사회의 ‘화난 사람들’이 모여야 합니다. 절망을 분노로 바꾸어내는 것, 분노를 가지고 희망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치이며, 여기에 우리 노동당의 길이 있습니다.
분갈이를 할 때입니다, 해야만 합니다.
식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집에 화분들도 많습니다. 몇 장의 누런 잎이 보인다고 하여 그 식물이 죽은 것은 아닙니다. 사랑으로 아끼면 다시 싱싱해집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때에 분갈이를 해주는 것입니다. 참 아끼던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동백나무입니다. 사랑을 듬뿍 주어 해마다 꽃을 피우고, 그 열매의 씨를 받아 2세까지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분갈이를 제때에 해주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더 넓고 좋은 화분에 옮겨주긴 했지만 다시 살아날지는 다음 봄이나 되어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이 어렵습니다. 시들었다고 합니다. 분명히 얘기해야 합니다. 비전을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선도적인 의제 앞에서 주저했기 때문이며, 진짜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내정치를 위한 정치, 현상유지를 위한 정치, 이제는 지겹지 않습니까. 경기도당에 대한 아쉬움도 많습니다. 안으로는 규모에 걸맞은 위상, 정치적 발언권이 부족했고, 밖으로는 당원들이 힘을 모아내서 벌이는 활발한 사업이 부족했습니다. 아무리 지역 특성 상 모이기 힘들고 힘을 집중하기도 쉽지 않더라도 곳곳에 현안들이 많은데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구심의 부재, 조직의 난점, 흩어진 세대, 다양한 관심사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한다면, 여기가 시험대입니다.
그래서 분갈이를 할 때입니다. 분갈이는 바뀜이자 만남입니다. 더 넓은 화분으로 바꾸고 새 흙과 뒤섞는 것입니다. 화분은 체계이고 흙은 사람입니다. 이번 기회에 당이 그리 되어야 합니다.
저도 저의 자리에서 일조하고자 합니다. 조직되지 않은 젊은 사람들을 모아내는 조직 활동을 해왔습니다. 국회에서 수차례에 걸쳐서 입법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정부정책과 제도개선에 직접 개입했습니다. 당 내에선 중앙정치와 부문활동에 헌신해왔습니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 성과, 네트워크를 지역에 결합시키고 싶습니다. 또한 경기도당 위원장은 중앙집행위원, 당연직 전국위원입니다. 당에 대한 확신과 나름의 정치노선, 당 운영 전반에 관한 기획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착실하게, 차근차근 일하겠습니다.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라 분명한 지향과 목표, 성과와 자신감이 있다면 노동당과 경기도당은 실험실이 아니라 실현의 장이 될 것입니다. 생기 있는 좌파정치의 출발점이 여기입니다.
바뀜과 만남을 위하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지요. 우리당에 필요한 것을 고민하기에 앞서 우리사회에 절실한 것이 무언지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뀜입니다. 바뀜의 가능성입니다. 바뀜의 가능성에 거는 기대입니다. 무언가는 바뀔 수 있고, 어디에선가는 바뀌어간다는 가능성, 그로부터 비롯될 수 있는 기대, 바로 여기에 우리의 길이 있습니다.
대표단을 비롯하여 노동당 곳곳에서 당직선거가 진행 중입니다. 이런 화두가 던져졌습니다. 대중-사회운동과의 결합을 말합니다. ‘새로운 대중-사회운동을 이끌고 있는 사람’에게 소임을 맡기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까. 미래를 위해선 과거와 현재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패기 있는 사람’, ‘성실함과 실력을 검증받은 사람’, ‘경륜을 갖춘 사람’, ‘운동의 역사와 함께해온 사람’이 같은 방에 모여 손발을 섞는 것보다 더 나은 장면이 있습니까. 만남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더 크게는 노동과 녹색의 만남, 생활과 정치의 만남, 지역과 문화의 만남입니다.
우리사회에 바뀜의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만남의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기대를 청해야 합니다.
동지, 이제 시동을 걸어봅시다.
시대가 원하는 당에게 절실한, 생기 있는 좌파정치를,
우리가 손잡고 발걸음 맞추어, 하나 되는 노동당과 경기도당에서부터 만들어냅시다.
다른 정치는 우리 삶에서, 새로운 정치는 우리 이야기로!
2015년 9월 13일
노동당 경기도당 위원장 후보
나도원 드림
<다른 정치는 우리 삶에서>
<새로운 정치는 우리 이야기로>
<생기 있는 좌파정치>
<하나 되는 경기도당>
<노동당 경기도당 위원장 후보 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