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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몰아쳤던 뉴타운 개발의 광풍은 권력자들과 토건족들의 이익을 위해 서민들의 피와 눈물을 짜냈다. 노동당 당원들은 전국 각처에서 이 터무니없는 사업에 반대하며 서민들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위해 앞장서 싸웠다. 그중에서도 의정부 뉴타운 반대투쟁을 진행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뉴타운 계획 취소를 이끌어낸 목영대 위원장의 활동이 주목된다.


<사랑과 혁명의 정치신문 R>에서 목영대 위원장의 뉴타운 반대투쟁 일지를 연재한다. 주민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 하며 지역사업의 모범을 만들어낸 목영대 위원장의 격렬했던 투쟁의 시간들을 돌아본다.





공청회를 무산시켜야 한다


공청회를 앞두고 열린 대규모 집회 덕분에 주민들의 반대 열기는 한층 높아졌다. 하지만 반대로 의정부시의 긴장감 역시 높아졌다. 대책위는 연일 머리를 맞대고 공청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마찬가지로 의정부시 또한 대책위의 이후 움직임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양측이 모두 머리를 싸매기는 매일반이었지만 대책위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공청회의 일정이 이미 촉박하게 다가온 때인지라 여론의 확산을 통해 공청회를 자연스럽게 무산시키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공청회의 일정은 그냥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뉴타운 사업은 법에 정해진 절차를 따라 진행되어야만 한다. 법에 따르면 뉴타운지구가 지정되고 3년 이내에 뉴타운계획 주민공람, 의회의견 청취, 공청회를 진행해야 한다. 법에 정해진 대로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면 지구지정의 효력이 자동적으로 상실되고 지구지정은 해제된다. 다시 말해 정해진 기간 안에 법에 따른 절차를 하나라도 하지 못하면 뉴타운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의정부시에서 주관하는 공청회는 이렇게 법에 의해 정해진 중요한 절차 중 하나였다. 결국 기간 내에 진행되어야 할 공청회를 무산시키는 것이 효과적인 뉴타운 사업 저지를 위한 방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미 경기도 군포에서 금정뉴타운 공청회를 무산시킨 경험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뉴타운을 반대하던 군포의 주민들의 뉴타운을 반대하는 자신들의 의견이 시청이나 경기도에 전달되지 않자 공청회에서 육탄전에 돌입했다. 공청회 장소로 대규모 인원이 몰려가 밀가루를 뿌리고 계란을 던지고 단상을 점거해 뉴타운 공청회를 아예 할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안양 만안지구에서는 주민들이 단상에 올라가 약 1억 원짜리 빔 스크린을 찢어 버리고, 의자를 내팽개치고 좌석에서 소화기를 뿌려 공청회자체를 아예 할 수 없도록 막기도 하였다


대책위에서는 우리도 이렇게 싸울 수밖에 없는지를 검토했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지금 상황에서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공청회를 무산시킬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냈다. 결론이 나자마자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사전에 다른 지역 공청회의 무산사례에 관해 교육을 진행하고 행동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때까지도 과격하고 극단적인 방법은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주민들의 부담도 덜고 조직력과 지도력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공청회를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애초 의정부시에서는 뉴타운 사업 초기에 진행된 주민설명회를 시청 등 공공기관이 아니라 학교, 교회 등에서 진행했었다. 대책위는 이런 사정을 돌이켜볼 때 공청회도 대략 그런 장소에서 진행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수월하게 공청회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군포에서처럼 대규모로 공청회를 개최했던 곳도 무산시켰는데 그보다 규모가 작다면 큰 무리 없이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장소나 인원이 그 정도라면 주민들을 최대한 동원하고 호루라기 등 물품을 준비해 연단을 막아 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건은 최대한 반대 주민들이 동참해주는 것인데, 이 정도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다. 공청회를 불과 2주 앞두고 의정부시는 개최장소를 예술의 전당으로 공지한 것이다. 공지를 접하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예술의 전당이라니…. 출입구는 통제되어 있고, 좌석이 천석이 넘는 공연장에서 공청회를 한다고? 게다가 금의지구, 가능지구 해당 지역도 아닌 외딴 장소에서 연 이틀 공청회를 하겠다? 이건 공청회를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의정부시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 공청회를 막아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겠구나.’

머릿속이 텅 비는 것처럼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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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타운 공청회가 예정되어 있던 의정부예술의전당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주민들은 사뭇 비장했다. 김재환 고문은 “내가 내일 죽더라도 이건 꼭 막아야 한다. 우리 이거 못 막으면 끝난다.” 고 했고, 어떤 주민은 “이제 우리밖에 없다. 시의원들도 모두 뉴타운을 찬성하는 마당에 이 공청회마저 성사되면 끝이다.”며 호루라기를 비롯한 물품들을 준비했다.


공청회 시간은 12월 1일 오전10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미리 공청회 장소를 살펴보기 위해 새벽부터 일찌감치 준비를 했다. 서둘러 예술의 전당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6시 30분 정도였다.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이었고 초겨울 새벽의 춥고 스산한 기운이 스며들어 온다. 그러나 냉랭한 날씨와는 달리 현장에는 벌써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이미 신새벽부터 도로변에는 몇 대의 경찰차를 비롯해 2개 중대병력이 족히 넘을 경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의정부시가 뭔가 대비를 단단히 했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예술의 전당 옆문을 지나 대극장을 살펴보러 공연장 문을 밀고 들어선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대극장의 무대 위에는 의정부시 최인규 도시건설국장이 공무원들을 앉혀 놓고 한참 작전지시를 하고 있었다. 이미 무대를 비롯한 앞줄 좌석 서너 줄에는 2~300명 정도의 공무원들이 가득 앉아 인의 장막을 치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나를 발견한 공무원들이 멈칫하는 동안 나는 소리를 질렀다.

“대체 이 새벽에 공청회 시간이 10시인데 벌써부터 도대체 뭐하는 거냐!”

“너희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야!! 이게 주민공청회냐? 공무원 공청회지”

항의를 하는 목소리가 더욱 격해지고 있었다.


최인규 국장를 비롯한 공무원들은 나의 항의에 당황해하며 당장 나를 끌어내라고 임해명 뉴타운과 과장에게 신호를 보냈다. 내가 끌려 나가지 않기 위해 의자를 끌어안고 버티자 임해명 과장, 김동수 계장 등 의정부시 뉴타운과 공무원들 대여섯 명이 내 손을 강제로 뜯어내고 몸을 당겨 번쩍 들어서 바깥으로 끌어냈다. 그리곤 대극장 문밖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몸싸움을 하는 동안 팔 다리가 꺾이고 몸에 타박상을 입었다. 꺾였던 팔 다리와 바닥에 부딪친 부위가 욱신욱신 쑤셨지만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분노와 울분, 무력감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정신이 어질어질 했다. 깜짝 놀란 주민들이 달려와 괜찮냐고 물으며 걱정을 했다.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몸을 추스르며 공연장 바깥에서 일단 대책위 주민들과 긴급회의를 하고 입장시간을 기다렸다.


공청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뉴타운 찬반측 세력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찬성측 사람들이 관광버스로 동원된 모습도 보였고, 일부 추진세력들은 피켓을 들고 현수막을 펼치며 뉴타운 찬성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뉴타운 반대주민들도 이에 질세라 동별로 준비해간 뉴타운 반대 현수막을 붙이고 피켓을 배치했다. 의정부시는 대극장 입구 출입문을 모두 봉쇄하고 공청회 시작시간 20분 전부터 입장을 시키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찬반 주민들은 입장 순서를 놓고 서로 고성이 오가고 실랑이를 벌였다. 가까스로 찬성측 반대측 따로 따로 입장을 했다.


대극장 안에 들어가 보니 공연장 앞좌석의 대부분은 벌써 공무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공연장 왼편의 빈자리로 200여명의 뉴타운 반대주민들이 자리를 잡았고 나머지 주민들은 분산되어 앉았다. 공연장의 오른편은 찬성 추진세력들이 차지했다. 자리를 잡는 중에 주민들은 시청 공무원들이 대거 동원된 모습에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공청회냐? 공무원들이 왜 근무시간에 여기 와 있는거냐? 시장의 나팔수냐??” 하며 여기저기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술렁이는 와중에 고재기 과장이 ‘의정부 금의지구 재정비 촉진계획 수립 공청회’시작을 알렸다. 곧이어 안병용 시장이 대회사를 시작하려고 하자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삑~~ 삑~~’ 울리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이 호루라기 소리를 시작으로 너도 나도 일어나 “반대, 반대!! 뉴타운 반대!!”라고 외치며 ‘삐익~~ 삐익~~’ 호루라기를 불었다. 공청회 장소는 고함소리, 호루라기 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주민들은 냄비도 두드리고 목소리가 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뒤편에 앉아 있던 용역회사 직원들은 반대측 주민들에게 모자를 던지고 종이도 삐죽하게 접어서 날리면서 반대측의 소리를 중단시키려고 했다. 


몇몇 주민들은 공청회를 회고하면서 그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전쟁에 비유하기도 한다.

“아이고 이거 6.25가 아무것도 아니야. 6.25땐 피난이라도 갔지, 이건 서로 얼굴 맞대고 이렇게 싸운 적은 없었어.”



의정부시장은 교수출신 시장(?)


이 난장판의 와중에도 안병용 시장은 대회사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엠프와 마이크 볼륨을 잔뜩 올려놓고 엄청난 음량에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얹어 주민들에게 강하게 호통을 치며 야단치듯이 이야기를 했다.


“‘저는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겠습니다. 의정부의 가치를 높이겠습니다’라고 이야기 하고 선거에 나와서 당선된 여러분들이 뽑아준 시이~장입니다. 뉴타운은 정비계획법에 의해 생활을 개선하고자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법정 계획입니다. 여러분들, 삶의 터전이 그게 뭐예요? 이 세상에 완벽한 게 어딨어요? 어느 사업이던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 거죠. 정치적 선동으로 주민을 기만하는 세력이 있어요. 진실을 막으려는 세력, 방해하는 세력이 있어요. 저 안병용 부끄러운 짓 하지 않았어요! 학생들 가르치는 교오~수 출신이에요. 의정부시민들이 뽑아준 의정부의 자랑스런 시장입니다. 어디다가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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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뉴타운공청회 대회사를 하고 있는 안병용 시장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뉴타운을 반대한다는 주민들의 울부짖음이 대극장을 가득 채우고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의정부시장은 호루라기 부는 주민들이 지치기를 기다려가며 3번씩이나 중단됐던 대회사를 모두 마쳤다. 


대회사에 이어서 발제와 토론이 시작되었다. 발제자와 토론자가 7명이나 무대에 나란히 앉아 주민들 모두 아무도 듣지 않고 들을 수도 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발제와 토론이랍시고 전문가들이 순서대로 뭔가를 했지만 별무소용이었다. 무대조명을 제외하고는 컴컴한 공연장 전면에서 영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화면에 떠오른 금의지구 지도 위에는 휘황찬란한 아파트들이 즐비했고, ‘뉴타운은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라는 고딕형의 글자들이 끊임없이 출렁거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발제자와 토론자가 마이크를 붙잡고 떠드는 소리는 호루라기 소리와 고함소리, 함성소리에 파묻혔다.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 공청회장에서 스크린에 비친 영상은 제 혼자 반짝거릴 뿐이었다. 이거야 말로 코미디 중에 코미디였다. 이게 토론회, 공청회라니….


당시 공청회 상황을 안계영 선생님께 들어보자.

“아 그때 내가 맨 앞에 있었잖아. 의자를 넘어가 단상에 올라가려는데 그 고재기(뉴타운과 과장)가 앞에서 손을 잡고 시비를 하는데 ‘너 이 눔 내가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 꼭 봐 주겠어’했어. 생똥이 나오겠드라구. 생전 못넘어가겠더라구. 숨도 가쁘지 막 생똥이 나올지 여기서 쓰러지지 이런 기분이 들더라구. 그 날 김순례씬가 그 여자분은 실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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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의 고함과 아우성이 가득한 속에서 뉴타운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



오직 절차뿐인 공청회는 그렇게 진행되었다. 찬성하고 반대하는 주민들이 서로 소리 높여 아우성치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반대하는 주민들이 무대를 점거하려고 시도했으나 곳곳에 공무원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몸싸움을 하며 주민들을 막아섰다. 무대를 점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뉴타운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뉴타운 해당지역의 주민들의 절규하는 목소리는 개의치 않고 책에 있는 내용을 차례대로 읽어가며 공청회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그렇게 금의지구 공청회는 끝이 났다. 첫 날 공청회가 끝나고 나는 병원에 가서 전치2주 진단을 받고 잠시 입원을 했다. 공무원들에 의해 시멘트 바닥에 내던져졌던 몸뚱이가 구석구석 멍들었고 욱신욱신 쑤셔왔다. 하지만 다음날 준비 때문에 병원에 계속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판박이 공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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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타운 공청회에서 주민 한분은 실신했다.



그 다음날 진행된 가능지구 공청회는 어제의 복사판이었다. 똑같은 장소에서 전날과 똑같은 짓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하지만 뉴타운 반대 주민들은 어제보다 더 많이 참석했다. 그런데 가능지구 공청회에서는 제2부 토론회 시간에 뉴타운에 반대하는 사람, 찬성하는 사람에게 발언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나는 뉴타운 반대 토론자 대표로 연단에 올랐다.


사회자는 “아, 지금 이곳은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공청회이기 때문에 소속과 설명을 말씀해 주세요. 한정된 시간이므로 5분을 특별히 할애해서 드릴 테니 말해주세요. 파이팅을 한다든가 그런 건 적절치 않습니다.” 라며 마이크를 내게 주었다.


“오늘 주민공청회가 되면 이후 뉴타운은 강행됩니다.”

무대 조명이 강렬하게 눈을 파고들었다. 방청석의 청중들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 공청회가 절차적으로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지금 여기 많은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은 강행되고 있습니다. 의정부시 시장님 아직 남아 계신가요?”

방청석에 시장이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 한 쪽 손을 눈 위에 올려 빛을 가리며 나는 물었다.


“시장님이 그랬습니다. 서민들의 아픔을, 눈물을 닦아준다고 그러셨어요. 주민들 수백 명이 평생 모은 재산을 단 한순간에 날릴지도 모르는 이런 중차대한 일이 주민들 동의도 받지 않고 강행 되고 있습니다. 이게 눈물을 닦아주는 건가요? 최소한 주민들에게 찬반 의견이라도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내가 동의도 하지 않은 채 개발 때문에 이 땅을 빼앗긴다는 게 말이 됩니까?”


천여 명이 가득 찬 공연장을 비추는 조명이 숨을 막는 듯했다. 뉴타운 반대 주민들은 아직까지 투쟁경험이 별로 없었고 오늘 공청회를 막아서기엔 조직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사면초가의 느낌, 게다가 찬성 측 주민들과 공무원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입이 바짝 바짝 타 들어갔다.


“뉴타운은 오늘 찬성, 반대 결정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수없이 많은 단계가 남아있습니다. 충분히 주민들의 동의가 없는 경우는 주민들끼리 찬반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다른 지역의 뉴타운 구역은 주민들끼리 평생 수십 년 동안 함께 살던 이웃끼리 이 개발문제로 원수지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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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지구 뉴타운공청회에서 연단에서 반대발언중인 필자



사실 긴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속에서 부글거리며 끓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한편으로는 이 절절한 말들로 뉴타운의 환상에 빠진 사람들을 설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젠 말로서 이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공청회 자체가 무효라는 선언만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시장님께 간곡히 호소합니다. 다시 한 번 주민들에게 의견을 물어봐주고, 의정부의 가치와 비전이 남의 것이 아니라 우리 주민들의 것으로 될 수 있도록 뉴타운정책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책임행정입니다. 올바른 정치인의 태도입니다. 오늘 이 공청회는 처음부터 그 정당성이 상실되어 있습니다. 요식행위에 불과합니다. 주민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뉴타운이 진행된다면 이후 주민들에게 너무 많은 고통을 주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뉴타운에 반대하고 이 공청회를 거부합니다. 이 공청회는 원천무효입니다. 퇴장하겠습니다.”


그렇게 애초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다는 취지는 간데없이 공청회는 성사되었다. 뉴타운 문제를 놓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주민들의 의견은 아랑곳없이 공무원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공무원 공청회’를 강행했다. 반대 주민들 의견을 묵살하고 일방통행식 ‘폭력 공청회’, 요식행위에 그친 ‘무늬만 공청회’는 그렇게 끝났다.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대학교수’ 출신 안병용 시장은 뉴타운을 찬성하고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공청회 날 주민들에게 분명히 각인 시켰다. 낡은 구 시가지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삶의 터전마저 멸시당한 주민들의 가슴에는 피멍이 들었다. 이제 주민들은 의정부시장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려야 했다.


그렇지만 주민들은 연 이틀간의 공청회 반대투쟁에서 매우 소중한 것을 배웠다. 금의지구 가능지구 공청회를 구분하지 않고 서로 함께 참여하면서 이제는 지구별로 따로 모이고 대응할 것이 아니라 함께 싸워야 한다는 공감대를 넓힌 것이다. 이 날을 계기로 뉴타운 반대를 위해서는 금의지구, 가능지구가 따로 없이 하나로 뭉쳐 싸워야 이길 수 있다는 의지가 주민들 속에 분명히 생겼다.



낙담, 그러나 화요교육과 금요집회로 다시 일어서다


뉴타운 공청회를 무산시키지 못한 지도부는 다소 낙담에 빠졌다. 엄청난 인력과 힘을 동원해 공청회를 강행한 의정부시에 맞서 반대하는 주민들의 힘은 아직까지 미약한데 그 힘만 갖고 이 한겨울에 뉴타운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 막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막막함은 주민들의 의지를 간과한 것이었다. 주민들은 달랐다. 공청회를 하고 나서 주민들의 분노는 더욱 높아져갔다. 의정부시의 뻔뻔스러움에 치를 떨었다. 도리어 우리들을 일으켜 세운 것은 주민들이었다. 때마침 공청회를 막지 못한 주민들의 분노와 항의의 목소리가 아직 잦아들지도 않았는데 의정부시장은 불에 기름 붓듯이 뉴타운 주민설명회를 하겠다며 동사무소 순회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사전 일정도 알려주지 않고 동네를 돌며 주민들을 앉혀놓고 일방적으로 뉴타운 사업의 당위성을 홍보하고 있었다. 몇몇 곳에서는 반대주민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대책위 회의를 소집해서 이후 대책을 논의했다. 단기간에 싸워 승부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장기전을 채비하는 동시에, 시청에 대해 주민의견을 반영하라는 요구를 계속하기로 했다. 매주 화요교육과 금요집회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의정부교회에서 화요교육과 설명회를 개최하고 매주 금요일에는 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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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속에서 계속된 뉴타운 반대 집회, 가두행진



추위가 유난히 매섭고 눈도 많이 왔던 겨울이었다. 평균연령이 75세인 노인들을 모시고 이 추운 겨울날 서명과 집회를 계속하는 강행군을 하다가 혹여 불상사라도 날까 걱정이 되었다. 한 번은 대책회의에서 금요집회를 당분간 실내교육으로 대체하는 건 어떻겠냐고 의견을 냈다. 그러자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추워도 결코 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었다. 지도부는 바로 조직을 추스르고 12월 추위를 녹이며 뉴타운 반대투쟁을 더욱 열심히 진행했다.



응답 없는 문희상 국회의원


대책위는 안병용 시장이 속한 민주당 소속 지역 국회의원 문희상 의원에게 나서줄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2008년 총선 당시 ‘뉴타운 재개발 적극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었기에 문희상 의원도 그 책임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책임 있는 지역 정치인으로서 주민들 상당수가 반대하고 있는 뉴타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기로 했다. 뉴타운을 추진할 때 반드시 찬 반 주민의견을 묻고 수렴해야 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요청해 나가기로 했다.


우리는 면담신청을 했다. 12월 23일 김경호 도의원(현 경기도의회의장) 배석 하에 문희상 의원과 간담회를 가졌다. 50여명의 주민들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주민들은 안병용 시장의 뉴타운 사업 강행을 성토하며 국회의원으로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줄 것을 주문했다. 


문의원은 이 자리에서 뉴타운 찬반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뉴타운은 이제 경기도지사 권한이라며 자신의 권한이 없다는 점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본인이 안병용 시장을 공천했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우리들은 지속적으로 주민의견수렴 요구를 했고, 이에 대해 문희상 의원은 뉴타운 검토위원회를 만들던지 해서 의견수렴을 제대로 해보자고 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주민들은 문희상 의원의 이런 답변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가졌다. 간담회가 끝난 이후 우리는 지속적으로 문희상 의원에게 간담회 때 약속한 대로 주민의견을 묻고 수렴할 수 있도록 검토위원회를 구성해 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문희상 의원은 검토위원회 구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응답이 없었다. 나중에 보좌관을 통해서 돌아온 얘기는 ‘검토위원회는 단지 촉구하겠다는 수준이었다.’며 발을 뺐다.


게다가 1월 중순에는 뜬금없이 찬성측 응답이 조금 더 나온 뉴타운 찬반 여론조사 결과를 언론에 발표했다. 이 여론조사는 조사한지 보름이나 지난 참고수준의 불분명한 여론조사였다. 안병용 시장과 짜고 치는 전략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다. 결국 뉴타운 재개발 공약을 걸고 당선되었던 책임 있는 지역 국회의원, ‘큰 정치인’ 문희상 의원은 뉴타운 반대 주민의견을 묵살했다. 주민들은 문희상 국회의원에 대해 가졌던 일말의 기대를 완전히 접어야 했다.



12월 31일 대규모 규탄 집회


12월 한 달 내내 뉴타운 반대집회와 교육이 계속되었다. 12월 10일부터 ‘뉴타운 반대 및 민주당, 의정부시장 규탄대회’와 시가행진을 매주 개최했다. 뉴타운 반대의 정당성을 알리고 뉴타운이 중지될 때까지 집회를 계속하겠다고 언론에 연일 보도자료도 배포했다.


의정부시장의 일방적인 주민설명회에는 주민들이 참석해서 시장에게 격렬하게 항의를 계속했다. 당시 안병용 시장과 같은 대학에서 교수로 까지 활동하며 안시장과 막역한 사이였던  한 목사님은 설명회 날 안시장을 만나자마자 “공청회 날 새벽부터 시청의 불을 훤하게 밝히고 공무원들을 동원해 공청회를 하는 게 대체 말이 되는가? 전두환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 아닌가?”하며 따지고 들어 그동안의 인간적인 관계까지 손상될 정도로 강력히 항의를 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많은 주민들은 시장이 설명회 하는 곳마다 쫒아 다니며 안시장에게 따지곤 해서 결국 안시장은 설명회를 중단해야 했다.


한편 우리는 의정부시가 경기도에 ‘재정비 촉진계획 결정신청’을 하기 전까지 다각도로 주민의견조사를 실시할 것을 압박하였다, 민주당의 입장변화도 요청하고 검토위원회 구성도 주장하며 어떻든 경기도에 촉진계획 결정신청을 최대한 늦추도록 한 해가 지는 줄도 모른 채 연말연초 투쟁의 고삐를 바짝 죄어 나갔다.


매주 화요일 의정부1동 의정부교회에서는 KBS 시사교육 쌈에서 방영되었던 ‘뉴타운의 숨은 두 얼굴’ 및 SBS의 ‘두껍아 두껍아 내집다오’ 등 뉴타운 관련 다양한 시사물을 방영하며 설명회를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주민들의 참석이 점차 늘어났다. 또한 뉴타운 구역 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작은 외벽 현수막 걸기도 하나 둘씩 해나갔다.


이 모든 활동을 모아내어 12월 31일 의정부중앙로에서 ‘뉴타운 중단 및 의정부시장 규탄, 경기도 재정비 심의요청 중단촉구’ 대규모 규탄집회를 가졌다. 그동안 집회 중에서 가장 많은 주민들이 참석했다. 2010년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재야의 종소리가 의정부에서는 ‘뉴타운 반대’ 대규모 함성소리가 되어 행복로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2010년 한 해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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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31일 의정부시장 규탄대회 이후 가두행진 모습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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