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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몰아쳤던 뉴타운 개발의 광풍은 권력자들과 토건족들의 이익을 위해 서민들의 피와 눈물을 짜냈다. 노동당 당원들은 전국 각처에서 이 터무니없는 사업에 반대하며 서민들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위해 앞장서 싸웠다. 그중에서도 의정부 뉴타운 반대투쟁을 진행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뉴타운 계획 취소를 이끌어낸 목영대 위원장의 활동이 주목된다.


<사랑과 혁명의 정치신문 R>에서 목영대 위원장의 뉴타운 반대투쟁 일지를 연재한다. 주민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 하며 지역사업의 모범을 만들어낸 목영대 위원장의 격렬했던 투쟁의 시간들을 돌아본다.





집회할 땐 요강을 휴대하라?

공은 경기도로 넘어갔다. 경기도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의정부를 비롯한 경기도 각 지역의 뉴타운의 향방이 결정된다. 2월 16일, 경기도 도시 재정비 심의위원회가 예정되어 있었고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야만 했다. 늦겨울 추위가 제법 매서웠던 그날, 의정부에서 주민들을 태운 버스 2대가 경기도청을 향해 출발했다. 그전에 우리는 재정비 심의위원회의 위원인 김시갑 도의원(의정부)에게 사전에 자료요청을 했고 이를 검토했다. 물론 결론은 의정부 뉴타운을 심의위원회에서 부결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고, 경기도청을 향해 주민들과 함께 달려간 것도 부결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공무원은 물론 경찰 역시 우리의 도청 방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도청 정문에 경찰차가 가로놓여 있었고 엄청난 수의 경찰병력이 도청을 에워싸고 있었다. 도청 안으로 들어가려는 우리를 경찰들이 막아섰다. 집회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별 수 없이 도청 앞에 버스를 세웠다. 그리고는 경찰의 방해에 대해 수도 없이 항의를 하면서 경찰과 함께 있는 공무원들에게 도지사 면담을 요청했다. 법석도 이런 법석이 없었는데, 집회에 참여했던 가능3동 신순남 여사님은 그날 고생을 이만저만 한 게 아니라고 회고한다.
“아이고, 그 때 추웠잖아요. 정월 대보름 전날인 열 나흗날인가? 찰밥 해 먹으려구 팥도 삶아놓고. 그거 다 냅두고 수원 갔는데, 세상에 우리가 집회신고를 안 하고 간 거라구 못들어가게 하는 거예요. 버스 두 대를! 경찰들은 차도 수 십대 와서 우릴 에워싸구 그랬어요. 노인네들이 추우면 소변이 더 마려운데 화장실 가자구 하는데도 거기 경찰들이 못 가게 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할머니들한테 그랬어요, 여기서 내리구 싸자구요. 그랬더니 경찰이 안 된데. 그래 그럼 요강을 사와! 그랬더니 그눔들이 요강을 가지고 다니래잖아! 기가 막혀서….”

연로하신 어른들께선 추운 날씨에 몸만 추웠던 것이 아니라 경찰들의 막 되먹은 행동에 상심이 크셨다. 평생 살던 고장이 다 사라지게 생겼다는 절망감과 가진 것 없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했다는 상심이 아마도 그 날을 더 춥게 기억하도록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좀 있다 여자 경찰들이 와서 하나둘씩 팔장끼고 화장실을 갔어요. 한참 걸어서. 눈은 오고 미끄럽고 경찰한테 이렇게 죄인 취급받고, 화장실도 맘대로 모 다니고…. 겨의 의정부 신광식 도의원이 ‘노인네들 먼데서 왔으니까 안 되겠다, 앉을자리 좀 만들어라’ 해서 점심때가 지나서야 도의회 민원실로 들어갔어요. 빵두 주구 뜨거운 물도 주구, 그러다가 김문수가 안 만나줘서 화가 나서 여기서 자구 가자 그랬어. 그렇게 버티다가 껌껌할 때 나왔어. 아, 어찌나 그 날 서러웠는지….”


도지사의 ‘뉴타운 재검토’ 발언

2월 21일부터 연속적으로 정책논평 형식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지역 일간지 등이 이 보도자료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의정부시가 사업을 추진하면서 마련한 계획에는 뉴타운 사업기간 중 철거 후 토지 등 소유자와 세입자에 대한 이주대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주대상자 대비 이주주택 수 부족 등 이주대란이 초래됨에도 그런 부분은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의정부시는 충분히 이주대책이 마련된 것처럼 꾸몄고 그러다보니 납득할 수 없는 엉뚱한 계획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러한 의정부 뉴타운 주민 이주대책을 ‘터무니없는 소설’이라고 규정했고, 경기도의 재정비 심의위원회에서 핵심적으로 지적한 사항인 이주대책을 이따위로 구겨 넣은 의정부 뉴타운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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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3일 경기북부청사에서 김문수도지사와의 면담, (사진출처: 연합뉴스) 


이와 동시에 경기도에 도지사 면담을 계속 요구했다. 수차례에 걸친 요청 끝에 어렵사리 도지사와의 간담회 일정이 만들어졌다. 날짜는 3월 3일, 장소는 의정부에 있는 경기도 북부청사였다. 이날은 도지사가 나오는 자리여서인지 기자들도 많이 왔다. 간담회 전에 우리는 간담회에 참석할 주민대표를 선정하고 발언할 내용들도 역할을 분담해서 준비했다.

면담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먼저 의정부 뉴타운 추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자고 했다. 우선 “결정고시 전이라도 ‘도시재정비촉진법(도촉법)’ 제7조를 근거로 도지사 권한으로 뉴타운사업을 폐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만약 결정고시 후 시가 주민들에게 연번을 부여하게 되면, 찬성측에서 OS요원을 풀어 동의서를 징구하는 과정에서 토지소유자와의 무리한 접촉 등으로 극심한 충돌이 예상된다”는 점을 부가했다. 또한 “금의 · 가능지구는 지난 1973년부터 1983년까지 이미 시에서 구획정비를 완료했고, 해당지역 주민의 6~70%가 7~80대 고령인데 이들 노인층에게는 임대수입이 유일한 생계수단이므로 뉴타운을 강행하는 것은 노인 생존권을 빼앗는 일”임을 강조했다. 함께 동석했던 민상기 고문은 뉴타운을 중단시켜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김문수 도지사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며 “뉴타운은 최근 부동산 경기침체 등 시작할 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 주민피해를 막으려면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면서 “4년 전에는 부동산 경기가 좋았는데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상황이 나빠졌고, 저출산 등으로 전망도 어둡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리곤 “의정부 금의 · 가능 뉴타운은 75%가 찬성하더라도 25%가 격렬히 반대하면 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작심한 듯 말했다. 다만 “뉴타운 지역은 도에서 정한 것이 아니라 시에서 신청한 만큼 시장과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며 “주민들이 직접 뽑은 시장하고도 의견을 나눈 뒤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고 하면서 결정권은 해당 시에게 있음을 시사했다.

애초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간담회 자리에서 그동안 우리가 요구해왔던 것에 대해 김문수 도지사가 나름대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을 들으며 뭔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했다. 면담을 끝내고 나오자마자 뉴시스와 연합뉴스 등 언론에 실시간으로 김문수 도지사의 발언이 대서특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5% 이상 주민이 찬성해야 … 결국 25% 이상 주민 반대하면 뉴타운 하지 말아야”라며 경기도지사가 처음으로 주민 반대 시 뉴타운 재검토를 언급했다는 중앙일간지기사가 나오자 주민들의 분위기는 급격히 반전되었다.

이날 김문수 도지사의 발언은 이제 더 이상 정치권이 뉴타운 재개발 문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거나 침묵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이듬해인 2012년에 다가올 총선, 대선을 앞두고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인들이 뉴타운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출구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우리는 김문수 도지사의 발언을 계기로 ‘주민들이 반대하는 뉴타운 재개발 즉각 해제하라’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주민들 사이에서 뉴타운 취소에 대한 희망이 점점 커져갔고 투쟁에 동참하는 힘도 커졌다.

대책위는 ‘의정부 뉴타운 계획의 문제점’에 대한 보도자료도 추가로 발표했다. 이미 의정부의 가능 · 금의지구는 토지구획 정리사업지구로 지정되어 도시개발을 했던 지역이며 비교적 기반시설이 양호한 곳임을 밝혔다. 그리고 그렇게 이미 정비된 지역을 다시 개발한다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물었다. ‘난개발, 슬럼화’ 운운하는 의정부시의 뉴타운 추진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했다. 또한 주민재산을 털어 공공기반시설을 확보하는 잘못된 사업방식을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폭로했다.


경기도 뉴타운·재개발 반대연합 출범

뉴타운 반대투쟁은 이미 경기도 전역의 문제였고 이젠 경기도와의 싸움으로 돌아섰다. 시군별로 각개약진하는 방식의 뉴타운 반대투쟁은 한계가 있었다. 어차피 경기도차원의 출구전략이 필요했고 관련한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했다. 3월 6일, 의정부에서 경기도 비대위의 회의가 열렸다. 뉴타운을 반대하는 지역대표들이 참석했다. 안양, 의정부, 광명, 군포, 오산, 부천, 구리, 김포지역의 대책위원장들과 전국 재개발비대위 연합대표 등 약 20여명이 모였다. 이 회의에서는, 향후 뉴타운 재개발 반대를 명확히 하는 투쟁방향을 설정하고 도촉법 폐지, 각 지구지정 취소 및 해지요구, 뉴타운 재개발 추진위 및 조합의 해산운동 등을 광범위하게 벌여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한 기존의 경기도 비대위를 정비하고 본격적인 경기도와의 한판 싸움을 위해 경기뉴타운 재개발 반대연합(이하 경기연합)을 출범키로 했다. 여러 논의가 오고갔는데 마지막에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경기연합의 상임위원장을 누가 맡을 것인가가 그것이었다. 기존 경기 비대위의 대표를 부천에서 맡았으나 임시적인 성격이 강했고, 부천 내부의 여러 사정상 계속 대표를 책임지기가 어려웠다. 안양 만안의 김헌 위원장도 대표를 고사했다. 사정은 어디나 비슷비슷해서 서로 위원장을 맡는 것을 주저하는 분위기였다. 나와 이의환 국장도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식 회의를 마친 후 자리를 옮겨 식사를 하는 중에도 논의는 계속되었으나 상임 위원장을 누가 할 것인지가 결정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에 내가 당분간 상임위원장을 맡기로 하고 회의는 정리되었다.

경기연합은 출범과 동시에 경기도 전역 순회집회를 확정했다. 1차로 3월 12일 의정부집회, 3월 25일 구리시 집회 등 연속 순회집회를 하면서 경기도를 압박하기로 했다. 김문수 도지사의 ‘뉴타운 근본적 재검토’ 발언 이후 후속대책을 집요하게 요구하며 투쟁의 강도를 높여나가기로 했다. 이미 경기도 내에서 뉴타운 재개발의 환상은 깨져 나가고 있었다. 금포 금정지구, 안양 만안지구, 평택 안정지구, 오산시 오산지구 등이 지정의 효력 상실, 취소 또는 무산되고 있었다. 남아 있는 의정부, 군포, 평택, 부천, 구리 남양주, 김포 등 다른 경기도 내 뉴타운 재개발 지구 주민들의 반대투쟁도 날로 격렬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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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0일 국회정론관 경기연합 기자회견. 뉴타운문제 해결을 여야에 촉구


다음 단계는 전국적인 여론의 불씨를 지피는 것이었다. 조승수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던 경험을 되살려 3월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경기연합 출범 이후 첫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는 경기도 내 한나라당 · 민주당 국회의원 및 각 시군 지자체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정책간담회에서 논의해야 할 뉴타운 관련 주요 의제와 요구사항 등을 발표했다.

지난 3월 3일 김문수 도지사가 밝힌 뉴타운 취소 및 해제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 평택 안정지구 방식으로 인감증명 첨부하여 찬성의견이 75% 이하일 경우 뉴타운 취소 및 해제의 1차 대상으로 하고 ▲ 토지구획정리된 사업지구는 무조건 해제 ▲ 기 설립된 추진위와 조합의 해산 및 구역지정 일몰제 도입 ▲ 도시재정비사업에서 토지의 강제수용관련 법률조항(도정법 제38조) 삭제 등의 내용을 기자회견문에 담았다. 그리고 이 기자회견문은 국회 의원회관 안에 있는 각 의원실에 배포했다.


국회로 진격하라

국회는 여론개진의 대상이자 공격대상이기도 했다. 3월 15일 국회에서는 이재오 의원 등이 신(新) 주택정책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 토론회에서 논의될 내용 중에는 도시재개발과 뉴타운관련 법, 제도 등을 개악하는 것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약간 부연을 하자면 △ 추진위원회 단계를 생략하고 조합구성을 신속하게 지원 △ 조합설립요건을 3/4에서 2/3으로 완화 △ 시장군수의 인허가 신청처리지연 시 자동 인허가제 도입 △ 조합임원 해임총회 발의요건 강화 등이 토론 내용의 골자였다. 이러한 법제 정비방안은 2010년 7월 정부가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악의적 개정안보다 더 후퇴한 안인데다가, 같은 해 12월 대통령 자문 사회통합위원회가 마련한 제도개선방안보다 훨씬 퇴보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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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15일 이재오의원 등이 개최한 新주택정책 토론회를 무산시킨 후 국회 앞에서


경기연합은 이러한 개악안을 가지고 국회의원 등이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고 불안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토론회는 당장 중단되어야 하며 만일 토론회를 강행한다면 뉴타운 재개발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투쟁이 있을 것임을 경고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예정대로 토론회는 개최되었다.


경기연합의 활동가들과 의정부 주민들이 토론회에 참석했다. 당시 한나라당의 실세였던 이재오 의원이 보궐에서 당선된 이후 첫 번째로 주관한 토론회여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왔다. 앉을 곳이 없어서 토론회장의 계단까지 사람들이 가득 찰 정도였다. 취재를 온 언론사 기자들도 상당수 보였다.


토론회 중간에 주민들은 뉴타운 재개발 추진과정에서 조합추진세력들에 의해 폭력적으로 쫓겨난 일 등 그간에 있었던 사정들을 울며불며 쏟아냈다. 주민들은 물론 참석자들 중 상당수가 함께 눈물을 흘렸다. 분노한 주민들 중 일부는 연단까지 올라가 항의를 했다.

“뭐 이런 개 같은 법이 다 있냐? 도대체 이따위 법을 누가 만들었냐?”

이의환 국장도 질문 겸 항의를 했다.

“뉴타운 법은 문제가 많은 법이고 떼법, 개법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마구 소리를 질렀다. 그중에는 연단을 점거해 드러눕고, 어떤 사람들은 옷을 벗어 던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욕을 해댔다. 결국 토론회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이재오 의원은 참석하지도 못했고 그렇게 토론회는 무산됐다. 주민들의 분노와 항의는 토론회를 취재하러 온 정치부 기자들에 의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뉴타운 문제의 심각성이 회피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중앙정치 차원에서도 절감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이날 이후 뉴타운 반대투쟁을 하는 주민들은 정부와 행정기관에서 하는 뉴타운 관련 토론회는 모조리 다 찾아다니면서 무산시켜버려야 한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생겼고, 또 실제 그렇게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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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8일 ‘찬성75% 안 되면 뉴타운 취소해야’ 최김재연 도의원


한편 경기도당 및 최재연 의원과도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김문수 도지사를 압박했다. 3월 18일은 제257회 경기도의회 임시회 회기가 끝나는 날이었다. 이날 본회의에서 최재연 진보신당(현 노동당) 도의원은 5분 자유발언 시간에 뉴타운 사업의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했다. “심각한 위기 상황에 이른 경기도 뉴타운 사업에 대해 김문수 도지사가 책임 있는 정책을 펴야 하며, 이제는 출구전략을 마련할 때”라는 것이 발언의 핵심이었다. 특히 “인감증명서를 첨부한 찬성의사 표명이 주민의 75%에 미달할 경우 지구지정을 해제할 것과 토지구획 정리사업을 이미 실시한 지구는 현지개량방식으로 전환할 것, 영세 가옥주와 세입자들의 재정착률 향상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 등 뉴타운 해결 방안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첨예한 공방, 어떻게 주민의견을 수렴할 것인가?


김문수 도지사가 ‘뉴타운 재검토’ 가능성을 시사한 이후 경기도 전역에서 뉴타운 반대투쟁의 열기가 더욱 거세졌다. 이러한 상황에 부응하여 우리는 의정부에서도 시청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투쟁을 더 힘차게 전개했다. 3월 12일 의정부대책위와 경기연합이 공동으로 치른 ‘뉴타운 폐기촉구 집회’에는 700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했다. 연대투쟁을 위해 부천과 구리 등지의 주민들도 대거 몰려들었다. 각 지역대표들도 속속 의정부로 모였다. 경기도의 주민들은 ‘지역은 달라도 내 집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야하고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연대정신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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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2일 경기연합과 공동으로 주최한 의정부 행복로 앞 집회


주민들은 뜨거운 열기로 집회를 진행했고 여세를 몰아 의정부시청까지 가두행진을 했다. 시청 앞에서 ‘당장 주민의견조사를 실시하라’고 외치면서 기왕에 제시했던 ‘인감증명 첨부 찬성 75% 미만이면 뉴타운을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경기연합은 이날 의정부 집회를 시작으로 경기도 전역의 뉴타운 반대투쟁이 벌어지는 곳마다 순회하며 투쟁집회를 열었다. 연이어 3월 24일에는 구리 수택동 돌다리 사거리 앞에 모여 경기연합 2차 연대집회를 개최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결정고시 확정과 상관없이 주민찬반의견조사를 즉시 시행하라’고 의정부시에 계속 요구했다. 우리는 수시로 의정부시청을 찾아 시장면담을 요청했다. 안 시장은 중국방문 전이라며 면담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찬성측의 입장에서 뉴타운을 추진해 나가던 안병용 시장이 불현듯 “결정고시 확정 이후 주민여론조사를 실시하자. 그리고 여론조사 실시방안을 논의할 검토위원회는 뉴타운을 찬성, 반대하는 주민대표를 뽑아 함께 구성하자”며 검토위 구성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협상을 제안했다. 아무래도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뉴타운 사업 재검토 시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그동안 뉴타운을 적극 추진했던 의정부시가 한 발 물러나 이와 같은 제안을 하는 것을 그냥 받을 수는 없었다. 제안의 성실성을 믿을 수도 없었다. 오히려 강력하게 밀어붙이던 뉴타운 사업의 추진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뉴타운 사업의 추진여부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결정고시 확정 이후’로 시기를 정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우리는 “결정고시 확정 이후에 검토위원회를 구성하자는 건 그저 시간만 질질 끄는 일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장의 제안에 일단 반대를 표명했다. 이때부터 검토위원회 구성을 놓고 의정부시청과 치열한 공방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물고 물리는 와중에 결정고시 확정일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경기도 도시재정비 심의위원회에서 의정부 뉴타운 사업계획을 부결시킬 가능성은 제로였다. 예정대로라면4월 초 결정고시가 날 것인데 그 이후의 대안도 고민해야 했다. 숙고를 거듭하고 회의를 계속했다.


현상의 판단과 대책의 마련은 여러 측면에서 검토되었다.

“결국 뉴타운 계획 취소를 위해서는 의정부시장이 제안한 주민의견조사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주민의견조사에서 반대의사가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결정고시가 떨어지더라도 조합추진위 구성을 위한 연번 부여 동의서(가칭 조합설립추진위에 제공하는 행정기관의 인허가 서류이며 번호가 부여된 공식 동의서류 부여를 의미함)를 주민찬반의견조사 실시 전까지 유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 뉴타운 반대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약속한다면 찬성측 포함 검토위원회 구성을 수용하고 주민의견조사를 하는 것으로 합의할 수도 있겠다.”

딱히 이거다라고 할 수 있을만한 결과가 도출되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내부토론이 계속되었다.


3월 23일, 의정부시장과 뉴타운 대책위 집행부는 1차 간담회를 진행했다. 우리는 비록 결정고시 이후라도 주민의견조사를 수용할 수 있다는 양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대신 찬반조사를 함에 있어서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해제여부를 결정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의정부시와 첨예한 쟁점을 만들어갔다.


의정부시장은 “찬반조사를 함에 있어 그 기준으로 반대의견이 구역별로 토지 등 소유자 전체의 50% 이상이 넘어야 존치(정비계획에 의거해 당장 개발하지 않겠다는 것) 혹은 제척(다 빼버리겠다)해주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는 토지 등 소유자 75% 이상의 서명이 있어야 조합설립 구성요건이 되므로 뉴타운 추진은 인감첨부 찬성주민 75% 미만이면 자연 해제하는 것으로 약속하고 주민의견조사를 할 것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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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23일 의정부시장과의 간담회, 늘 주민들은 시장실 앞을 지켰다.


또한 우리는 뉴타운 지구지정 1년 전부터 토지를 매수한 외지소유주는 투기 목적이므로 배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시청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맞섰다. 한편 우리는 주민의견조사 이전에 반드시 설명회 및 소식지나 홍보물 배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연번부여 동의서 발부포함 모든 인허가 업무를 중단하는 것에 합의해 달라고 했다.


“뉴타운은 절차법이라서 결정고시 확정이후에 바로 고시가 떨어지고 나면 조합추진위가 연번부여 동의서를 시청으로부터 교부받아 조합설립을 추진하게 된다. 이때 의정부시가 연번부여동의서를 발급해 주면 결과적으로 뉴타운을 추진하는 쪽으로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게 될 것이다. 이 시기가 되면 뉴타운 추진위측은 os 요원을 동원해 각종 감언이설로 꼬드기거나 협박을 하면서 주민들에게 조합추진동의서를 받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 주민의견을 묻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주민의견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선행요건으로 주민의견조사를 끝내기 전까지 추진위 연번부여동의서 교부를 유보하겠다는 것을 확약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받아들여진다면 4월 1일 결정고시 이후라도 주민 찬반의견수렴 조사에 합의, 검토위원회에 함께 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안이었다. 


뉴타운 계획 최종 전략을 놓고 의정부시와 팽팽한 교섭은 계속되었다. 주민설명회와 홍보지 배포 등 대부분의 안은 합의가 되었다. 그러나 연번부여동의서 교부 건은 막판까지 쟁점이었다. 의정부시장은 연번부여동의서 교부 등 인허가 중단에 대해 ‘법대로 해야 한다’며 난색을 표명했다. 우리는 일단 철수했다.



도망가 버린 의정부시장


2차 간담회가 잡혔다. 3월 29일 오후 4시.

“오늘이 마지막 교섭이다. 더 시간이 없다.”

왠지 모를 결연함이 가슴 한 끝을 스쳤다. 봄은 다가오고 있었지만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아직까지 제법 차가웠다. 시청으로 향했다. 주민들은 우리가 의정부시와 협상할 때마다 늘 자발적으로 시청으로 몰려왔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민원실에는 6~70명의 주민들이 와 있었다. 간담회를 시작하기 전에 집행부와 구역 대표 등 교섭대표들이 결의를 다지고 주민들에게 인사를 했다. 주민들을 뒤로 하고 시장실로 들어가 2차 간담회를 시작한 건 그 다음이었다.


의정부시장은 평소 면담시간에 말이 많은 편이다. 면담시간의 절반 이상을 구구절절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학생들에게 강의하듯 시간을 써버린다. 이미 기초적인 사항을 다 알고 있는 구역 대표들에게도 늘 지루한 설명을 반복했다. 그리고는 정작 우리가 중요한 주장을 하려하면 매번 말을 자르거나 반박해서 결국 시간을 다 허비하게 만든다. 몇 번을 겪으면서 시장의 행태에 익숙해진 우리는 면담 전에 작전을 세웠다. 이의환 국장이 문건을 준비하여 사전 브리핑 방식으로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면담 전반을 우리가 주도하여 끌고 가고 시간도 이러한 작전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배분했다.


이날 회의를 그렇게 진행했다. 우선 우리의 요구사항을 재차 설명하고 애초 요구했던 ‘결정고시 이후 연번부여동의서 교부 등 모든 인허가 업무 중단’ 등에 대한 시장의 의견을 물었다. 23일 간담회에서 이 의견을 다소 숙고하는 듯 보였던 안 시장은 이날은 평소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그러다가 안 시장은 “그 안은 확답하긴 어렵다. 다만 행정적으로 최대한 감안하겠다. 믿어 달라.”라고 하며 면담을 마치려 했다. 우리는 “오늘 결정하지 못하면 앞으론 못한다. 시간이 없다. 확답을 해달라.”라며 교섭을 계속 할 것을 요구했다.


일방적으로 면담을 마치고 일어나는 시장의 앞을 주민대표들이 막아섰다. 그러자 안 시장은 슬며시 화를 냈다.

“못나가게 하면 시장 감금에 시장실 불법 점거다. 업무방해! 나도 고발할 수밖에 없다. 일정이 있다.”

하지만 교섭대표들은 시장을 곱게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다녀올 때까지 회의를 하면서 기다리겠다.”

하지만 시장은 별반 다른 이야기 없이 면담장소를 나가버렸다. 그러자 이번엔 공무원들이 “여기 계속 머무는 것은 불법적인 점거이니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어떻게 해서든 시장의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는 절박감에 우리는 나가라니 못나가겠다느니 하는 실랑이를 계속하면서 수십 분을 버텼다. 하지만 시장도 없는 시장실에 계속 있는 것도 공무원들과 의미 없는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는 것도 실속 없는 일이라 회의 공간을 별도로 달라고 요구했다. 공무원들이 안내한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고 계속 회의를 거듭하며 대책을 논의했다.


시간은 점점 흘러 저녁 7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시장의 발언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과연 시장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연번부여 동의서를 발급하지 않겠다는 확약 없이 그저 행정적으로 최대한 감안하겠다는 말만 믿고 물러섰다가 나중에 또 뒤통수를 맞으면 어떻게 하나? 논의가 분분할 수밖에 없었다.


시장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완고했다.

“그동안 시장은 적극적으로 뉴타운 찬성입장이었다. 믿을 수가 없다. 다 시간 벌기용 아니냐? 차라리 여기서 끌려 나가자. 이게 확정되지 않으면 그대로 끝장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고려를 하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은 철수하고 다음 대책을 수립하자.”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공무원이 허겁지겁 회의실로 들어왔다.“큰일 났다. 지금 주민들이 난리가 아니다. 1층에 좀 내려와 주민들에게 어떻게 이야기 좀 해달라.”

공무원의 말투와 표정은 사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회의를 중단하고 시청 로비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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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노한 주민들에 의해 난장판이 된 의정부 시청 민원실 로비


이미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직후였다. 공무원과 주민들의 옷이며 머리는 허연 밀가루가 덮여 있었고 바닥엔 밀가루며 재활용 쓰레기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고 퀴퀴한 냄새마저 진동했다. 시장이 교섭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이 흥분한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그동안 수차례 시청을 들락거리며 면담을 요구할 때마다 늘 면담을 거부하거나 기껏 면담을 하다가도 바쁘다는 둥 일정이 있다는 둥 하며 자리를 떴던 시장의 모습을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시장이 성의 있게 주민들의 말을 들어주고 주민들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다가 오늘도 마찬가지로 시장이 자리를 떠버렸다는 소식을 듣자 그동안 참고 참아왔던 주민들의 분노가 일시에 터져 나온 것이다. 그 난장판 여기저기서 주민들은 공무원들을 붙잡고 항의를 하고 있었다.



의정부시청 점거농성


일단 주민들을 진정시키고 잠시 동안 시장과의 교섭이 결렬된 과정에 대해 보고했다. 주민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교섭이 중단되었다는 보고를 받자 지도부에 대한 실망이 주민들의 얼굴에 역력하게 드러났다. 누구보다도 주민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판단을 하지 못한 공무원들과 정보과 형사들이 “지도부가 어떻게 좀 주민들을 진정시키고 집으로 돌아가시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어이가 없었다. 지금 그런 말이 나오게 생겼냐고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시장이 면담에서 아무런 확답을 주지 않아 이렇게 된 거 아니냐? 시장이 와서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진정이고 뭐고 되는 거지. 평생 모은 집을 빼앗기게 생겼는데 이 어르신들이 그냥 있겠냐?”

우리의 항의와 요구는 간명했다. 시장이 사태해결을 위해 책임을 지고 나서라는 것이었다.


구역대표들과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후 어떻게 상황정리를 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을 나누었다. 여러 주장이 분분히 제기되었다. 하지만 크게 보자면 일단 집에 갔다가 내일 다시 오자, 오늘밤은 여기서 버텨야 한다는 두 가지 주장으로 견해가 갈렸다. 시청로비에서의 소요가 사전에 계획된 것은 아니었지만 주민들의 분노와 열기는 철야농성이라도 불사할 듯한 기세였다. 농성을 하게 된다면 그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약간의 의견을 종합한 후 우리는 공무원들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결정고시 이후 조합설립을 위한 추진위원회 구성을 위한 연번부여동의서를 교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위한 시장면담이 요구사항이었다. 그리고 시장이 면담약속을 잡아주면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우리의 요구는 시장비서실장과 총무국장에게 전달될 것이었다.


그러나 밤 10시, 11시가 넘어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그 늦은 시간에도 집으로 돌아간 주민은 몇 분 되지 않았다. 아직 4~50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민원실과 시청로비 여기저기서 시장의 면담약속을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중간에 누군가가 “밤도 늦고 했으니 집에 가서 자고 내일 아침에 일찍 오는 게 어떠냐?”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철수를 하려면 진즉에 해서 다음을 충분히 준비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 와서 주민들이 동요하면 힘만 빼고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서 밤을 새워야 합니다.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이렇게 모이기 힘들고, 어쩌면 다시는 이 자리에 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안타깝긴 하지만 다그쳐야 할 시기였다. 어르신들께 죄송하기는 했지만 결연하게 소리쳤다. 일부 구역 대표들 중에서도 집에 가자는 사람이 있었다. 뉴타운 반대투쟁을 위해 대책위가 구성된 이후 처음으로 버럭 화를 냈다.

“집에 가긴 어딜 갑니까? 여기서 주민들이 모두 다 농성하자고 하는데! 지도부가 모범을 보여야죠!”

그러자 더 이상 집으로 가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농성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농성이 4일 동안 계속될지는 그 때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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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정부 시청에서 농성 중인 주민들



시청 로비 찬 바닥에 눕다


가능지구 이종완 대표님의 생생한 기억을 통해 그날의 상황을 재구성해보자.

“내가 처음 시장한테 차곡차곡 이야기 하면서, 시장님도 눈이 있으면 보고 귀가 있으면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야지 왜 찬성하는 그 사람들, 추진위들 얘기만 듣고 말이지. 그 사람들은 돈 벌라구 하는 거구, 우린 집을 지킬라구 하는 건데, 주민덜 눈물나게 허는 게 맞는 건가 시장님 생각 좀 해보십시오, 그랬어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헐지 대비책도 없고, 이거는 강제랑 똑같으니까 우리 주민들헌테 나무랄 것이 아니다, 이랬어요.”


농성이 시작되던 과정에 대해서도 이종완 대표님은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곤 나와서 대표들이 회의를 등나무 밑에서도 했어요. 각 구역대표들 불러놓고 나는 그 때 그렇게 생각했어요. 농성을 하되 자는 거 이런 거는 하지 말자, 괜히 공권력을 동원헌다구 자꾸 그런 말들도 있고 그래서 나는 그렇게까지 해서 허는 게 큰 일 아니냐 그랬는데 결국은 노재경 총무나 안계영 방송팀장, 김재환씨 모두들 잡혀가는 게 뭐 저거허냐, 끝까지 결사반대하구 들어가서 농성을 해야 한다, 그래가지구 들어가 가지구 그렇게 된 거야.”


첫날밤은 30여명 정도가 자리를 지켰다. 잠자리가 불편했지만 민원실이 개방되어 있어 의자에 누우신 분, 탁자에 쪼그려 얼굴을 묻고 주무시는 분, 시청로비에 집회 대 사용하던 깔개를 가지고 길게 펼쳐놓고 그 위에 잠자리를 만드신 분, 어디선가 종이박스를 구해와 어르신들이 노숙자처럼 한뎃잠을 어렵게 청하고 있었다. 차가운 시청 로비 시멘트 바닥에서 평균연령 70대의 노인들이 생전 처음으로 관공서를 점거하는 철야 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의정부시청 건립 역사상 처음 생긴 일이기도 했다.


세상살이 겪고 겪어 닳고 닳은 어르신들이라도 이런 고생은 쉽사리 잊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저녁에 찬 바닥에서 잔다는 게 보통이 아니에요, 노인네들이…. 포대기나 있어요? 첫 날은 그냥 잤지. 아주 추웠어요. 아줌마들 몇몇이 다음날부턴 구루마에 이불 갖고 와서 자고 돗자리도 깔고 자고 그랬어요. 들째 날 되니까 밥도 먹여야 되고 뜨거운 물 해오는 사람도 있었구. 가능동 8구역에서 하루는 미역국도 육개장도 끓여 오구 밥을 쪄 오구, 다음날은 내가 국을 끓여서 차에 싣고 가서 내렸어. 누가 또 컵라면을 한 상자 받아놓고 여기저기서 김치도 가져 오구 김밥도 가져 오구 그래서 한 끼 또 먹었어요.”

가능 3구역 신순남 여사님의 회상이다.


다음날, 전날 저녁에 먼저 집에 가신 분들이 새벽부터 시청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부터 밥을 해 오신 분, 국을 끓여 오시는 분들이 모여들었다. 첫날밤 농성을 하신 어르신들과 함께 이른 아침을 시청로비에서 맞이했다. 주민들이 가져온 음식들로 아침식사를 챙겼다. 시청로비에서 이렇게 맛있는 아침밥을 먹는 일은 아마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미 서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를 주민들은 알아서 찾아냈고 자연스럽게 역할분담을 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40여명의 어르신들이 시장실 계단을 바라보며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시장실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는 주민들이 올라오는 것을 막으려고 공무원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오전 8시 경이 되었을 때, 면담요청에 밤새 묵묵부답이었던 안병용 시장이 나타났다. 안 시장이 시청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 뒤를 7~8명의 공무원들이 우르르 호위를 하고 있었다. 안 시장이 주민들을 외면하고 주민들 오른편 옆을 지나 계단을 올라갈 때였다. 경호원 노릇을 하던 공무원들 일부가 좁은 통로를 올라가며 주민들을 발로 밀치고 나갔다. 앉아계시던 어르신들은 얼떨결에 밀려났고 그 바람에 서로 엉키면서 등과 뒤통수를 부딪쳐 넘어지거나 옆으로 쓰러졌다. 곳곳에서 아이쿠, 으악 하는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짧은 순간에 계단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박명동 어르신, 박준호 대표, 황인엽 여사 등 대여섯 명이 대책도 없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가 여기저기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었다. 아픈 건 둘째 치고 어르신들의 분노는 이제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다. 박명동 어르신과 박준호 대표는 분을 못이겨 페트병을 들고 공무원들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고 소리쳤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아들뻘 되는 공무원들의 멱살을 잡고 실랑이를 벌이며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결국은 이 사건으로 인해 나중에 안병용 시장은 박준호 대표를 고소했고 벌금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4일 간 이어진 분노, 그리고 연대


시청로비 농성 2일차. 부천 시청농성에 이어 의정부시청 농성이 벌어지고 뉴타운 재개발 반대운동이 격렬하게 확산되자 언론의 관심도가 높아졌다. 경기연합 소속 타 지역 대책위원회 대표들의 연대 지지방문도 이어졌다. 시청로비에서 고생하는 농성자들을 격려하고 함께 하기 위해 뉴타운 반대운동이 진행되는 지역의 주민들의 발걸음이 시청으로 이어졌다. 낮에는 100여 명이 넘는 주민들이 시청로비를 가득 채웠다. 함께 구호도 외치고 가능 · 금의지구 여기저기서 가져온 먹거리를 함께 나누었다. 같이 잠을 자고 같이 먹으면서 주민들은 더욱 친해졌다. 이제는 서로 살아온 이야기며 가족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기까지 했다. “살다 살다 이젠 늙어서 별걸 다 해보네. 아니 데모도 모자라서 이젠 철야농성이야?” 말끝에 서로를 쳐다보며 웃음꽃이 만발했다.


주민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내 머리 속에 어떤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나와 우리세대가 20대에 민주화운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엄청난 충격과 계기가 된 광주민중항쟁, 우리 세대에게 광주민중항쟁은 형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해방구이기도 했다.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의 발포와 이에 저항하는 무장봉기 이후, 시민군이 탈환한 해방광주의 일주일간의 이야기. 그 기간 동안 시민들은 서로 하나가 되어 김밥을 말고, 헌혈하고, 살던 곳을 지켜내며 모두가 한 식구처럼 서로를 위로해주고, 솔선수범해서 일을 나누었다. 누구는 민중의 자치능력을 보여주었다고도 평가한다. 그 해방구의 단초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오늘의 이 시청농성 경험은 주민들의 공동체험으로 뿌듯하게 남아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가슴속 깊이 남게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뉴타운이 해제되었을 때의 기쁨도 정말 컸지만 개인적으로는 의정부시청 농성 4일간, 이때가 정말 한없이 즐겁고 가슴 벅차며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농성이 계속되면서 농성의 방식도 다양해졌다. 지구별, 구역별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을 운영했다.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구호 외치기, 뉴타운에 반대하는 목소리 내기 등 노조의 파업투쟁처럼 즐겁게 농성분위기를 만들어갔다. 그러던 중 잠깐의 소란이 있었다. 주민 중 한 분이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분이었는데, 이분이 헌 옷가지며 물품을 여기저기 시청 로비에 늘어놓았다. 오물을 갖고 들어오려다가 정문에서 소동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주민들은 그런 행동에 대해서는 불편해 했다. 민원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은 하지 말자며 주민들은 회의를 통해 수칙을 정했다. 그리고 시청로비를 깨끗하게 청소했다.


우리는 대책회의를 통해 농성 이후 대비책을 세웠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시청 공무원과 경찰에 의정부시장과의 면담약속만 잡아주면 농성을 풀겠다는 의사를 꾸준히 전달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농성장 침탈 이후를 대비해 2선 지도부도 꾸렸다. 저녁때가 되자 전날과 달리 시청에서 민원실과 연결된 모든 통로를 차단하고 봉쇄했다. 그나마 민원실에 생수가 있어 물을 마실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단수가 된 것이다. 공무원들의 행태에 주민들은 분노했다.

“부천시청 농성기간동안에는 그나마 어르신들 건강을 걱정해서 최소한의 편의시설은 제공했는데, 의정부시청은 물도 못 마시게 민원실을 봉쇄하다니.”


분통은 터지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낭보가 들어왔다. 3월 30일 저녁 MBC 9시 뉴스에 의정부 시청 농성장면이 방송되었다. 의정부 뉴타운 문제가 전국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사실 이날 취재는 이의환 국장의 순발력이 한 몫을 했다. 경기연합 정책국장을 겸하고 있던 이 국장이 부천 등 다른 지역 취재협조 요청을 받고 의정부농성도 취재협조를 부탁한 것이었다.


시청농성이 3일째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시장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면담을 약속하면 농성을 풀겠다고 했음에도 반응이 없었다. 의정부시 비서실장도, 총무국장도 전화연락이 되지 않았다. 하다못해 경찰 정보과에서도 시장면담에 대한 별다른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았다. 지금 당장 만나달라는 것도 아니고 만나겠다는 약속만이라도 하라는 소박한 요구조차 외면하고 있는 것이었다. 절박한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한 요구에 시장이 침묵하고 있는 동안 주민들은 이것이 공권력을 투입해 지도부를 연행하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강제해산과 강제연행


초저녁이 되자 의정부경찰서장이 시청 경비실에서 따로 만나자고 제안을 해왔다. 곧바로 연행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르신들이 농성하고 있기에 섣부른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혼자서 정보과 형사와 경비실로 갔다. 좁은 경비실에는 처음 보는 경찰서장과 정보과장 등 7~8명의 경찰들이 있었다. 그들이 나를 둘러싸고 약간은 위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상황에서 면담이 시작되었다. 서장은 “시청이라는 공공건물에서 농성이 장기간 이어지면 우리도 그대로 볼 수만은 없으니 일단 농성을 풀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의 농성을 해제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시장이 면담약속만 해주면 된다. 지금도 비서실장과 총무국장에게 요청해 놓은 상태이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서장이 시장면담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하고 면담을 끝내고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내일 새벽에 공권력이 투입될 것이라는 정보가 속속 들어왔다. 공권력 투입을 앞두고 긴급하게 회의를 소집했다. 의견을 교환했지만 하나로 모아지지는 않았다. “이제 우리의 요구도 많이 알려졌으니 농성을 풀자”, “어르신들의 건강이 걱정된다.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느냐. 이쯤에서 정리하자”, “아니다, 끝가지 가야한다” 등등. 하지만 공권력이 투입되면 연행까지 각오해야 하는데 각 구역 대표들은 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도 주민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도 명분도 없이 농성을 스스로 해제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일단은 내가 중심이 되어 책임을 지고 상황을 헤쳐 나가기로 하고 2선 지도부(이진형 위원장과 이의환 국장)는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며칠간 피로가 누적된 어르신들도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누가 농성장을 지킬 것인지와 오늘밤 철야농성을 진행하는 것 등은 참석자들의 개별적인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그런데 그동안 한 번도 앞에 나선 적이 없었던 임태희씨가 선뜻 본인이 철야농성장을 지키겠다고 나서주셨다. 다른 분들에게 큰 용기를 주는 결단이었다. 늘 집회때마다 앞장서서 징을 울리던 김순례 여사는 하루도 빠짐없이 농성장을 지키더니 기어이 오늘도 함께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서울 아현동에서 뉴타운 재개발로 쫓겨나신 후 의정부에 와서 오늘 처음 농성장 지지방문을 오신 민명희 여사님도 함께 있겠다고 하신다. 거기다가 서울에서 연대방문차 오신 장경태 전국주거대책연합 의장이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돌리면서 농성정 인원이 별로 없는데 자기라도 아침까지 있겠다고 나섰다. 결국 전부 해서 10여 명 남짓이 공권력 투입을 앞둔 시청로비 철야농성장을 지키게 되었다.


어스름한 새벽녘이었다. 농성 4일차가 되던 날 새벽에 벌써 전경들이 시청 정문을 둘러쌌고, 경찰 체포조와 정복을 입은 경비대들이 시청로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경비대장이 지금이라도 집으로 돌아가시면 잘 모셔드리겠다고 방송을 하자마자 경찰들이 시청로비로 몰려들어왔다. 그들은 로비에서 잠들어 있던 주민들을 둘러싸고 연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경비과장이 퇴거 불이행 어쩌구 하면서 연행을 시작하려 했다. 나는 경비과장에게 “언제 퇴거명령을 했느냐? 퇴거명령을 한 적이 있느냐?”면서 강하게 항의했다. 경비과장이 잠시 머뭇거리는 듯 했다. 그러나 이내 “연행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우리를 에워싸고 있던 전경들이 득달같이 몰려와 앉아 있던 우리를 한 사람씩 들어 밖으로 끌어냈다. 끌려 나간 우리는 차례로 경찰버스에 실렸다. 주민들은 그냥 끌려나가지 않았다. “주민재산 강탈하는 뉴타운 해제하라!”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소리소리 외쳤다. 아침에 농성장으로 들어오던 주민들이 우리가 경찰버스에 끌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강제연행되는 우리를 보는 주민들의 눈빛은 안타까움으로 젖어 있었다. 경찰호송버스 바깥으로 주민들이 하나 둘 몰려들었다. 그 와중에 우리는 나를 포함해 5명이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경찰서에 연행되어서도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에게 경찰조사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야 했다. 우선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성훈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주민들에게는 심문에 답변하지 말고 변호사가 입회한 후에 조사를 받으라고 알려줬다. 1차 조사를 마치고 민명희 여사와 임태희씨는 다행히 단순가담자로 분류되어 바로 훈방조치 되었다. 그러나 나와 김순례 여사, 장경태시는 유치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안병용 시장은 우리 세 명 이외에도 농성장에서 밀가루를 뿌리며 페트병을 휘두르거나 던졌다는 이유로 4명의 주민을 퇴거불이행, 특수공무집행방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강제 연행되는 과정에서 구속이 될 수도 있다는 예상을 했다. 두 달 여전 부천시청 점거농성 때 연행되었던 뉴타운 반대대책위원회 지도부에게 법원이 실형 판결을 내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만약 구속이 되면 앞으로 반대투쟁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경기도와 의정부의 태도가 쉽사리 뉴타운을 포기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되지 않는 상황에서 해야 할 활동과 투쟁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싸움이 이어졌던 것은 주민들의 성원과 참여덕분이었다. 그리고 2선 지도부의 능력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신뢰를 하고 있었다. 걱정을 훌훌 털기로 했다. ‘내 인생에서 세 번째로 구속과 감옥생활을 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는 오히려 단단한 각오로 변해갔다.



뉴타운 결정고시, 더 이상 퇴로는 없다


그런데 우리가 강제 연행을 당하던 바로 그날, 4월 1일에 경기도는 의정부 가능 · 금의지구 뉴타운 결정을 고시했다. 의정부시청과 경찰이 그토록 신속하고 과감하게 농성을 해산시킨 이유가 여기 있었다. 유치장에 갇혀 있는 동안 이 소식을 듣자 무엇보다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화가 치솟았다. 그러나 역시 주민들은 이 상황을 그냥 넘기고 있지 않았다. 의정부 시청으로 대거 몰려온 주민들이 농성 중에 연행된 나와 주민들을 석방하라고 외치며 규탄집회를 했다. 또한 경기도의 결정고시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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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일 집회에 참여한 주민들의 모습 


시청 앞에 모여든 주민들은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김문수 도지사와 의정부 시장의 폭력적인 뉴타운 사업 강행을 규탄한다!”

주민들은 시청에만 몰려간 것이 아니었다. 경찰서로 항의방문을 왔다. 항의방문을 하던 중에 금오동에 사시는 한 어르신이 속옷 하의만 남긴 채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목영대를 내놔라!”하며 여기저기 뛰고 소리치고 경찰들과 몸싸움까지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목이 메어왔다. 이 어르신들이 도대체 무슨 업보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집회 이후에 경기연합 및 대책위 위원장 몇 분이 면회를 왔다.


그날 집회 이후, 연행되었던 우리들은 약식 기소로 경찰서를 나오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청농성을 진행하는 기간 동안 나나 다른 주민들이 처벌을 받아야만 할 정도의 위법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청농성의 강도와 비교할 때 꼬투리를 잡힐 만한 일이 없었다는 것은 주민들의 덕분이었다. 분노의 감정으로만 보자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만은 주민들은 싸움을 하는 중에도 인내심과 자제력을 잃지 않았다.


석방이 되어 경찰서를 나오자 바깥에 몰려 있던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환호했다. 마치 석삼년 가뭄 끝에 단비를 맞는 사람들 같았다.




[ 목영대 (노동당 의정부 전국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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