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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단지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 아냐

전국을 몰아쳤던 뉴타운 개발의 광풍은 권력자들과 토건족들의 이익을 위해 서민들의 피와 눈물을 짜냈다. 노동당 당원들은 전국 각처에서 이 터무니없는 사업에 반대하며 서민들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위해 앞장서 싸웠다. 그중에서도 의정부 뉴타운 반대투쟁을 진행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뉴타운 계획 취소를 이끌어낸 목영대 위원장의 활동이 주목된다.

<사랑과 혁명의 정치신문 R>에서 목영대 위원장의 뉴타운 반대투쟁 일지를 연재한다. 주민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 하며 지역사업의 모범을 만들어낸 목영대 위원장의 격렬했던 투쟁의 시간들을 돌아본다.
 

 


의정부, 다시 돌아와야 했던 이곳
 
“어쩐지 월급을 너무 많이 갖다 준다 했어.”

평생의 동지이자 친구인 옆지기는 쿨하게 한 마디 던졌다. 그게 다였다. 평생 다녔던 직장 중에서 가장 월급이 많았던 곳을 1년 만에 그만둔 남편을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체념인지 달관인지 모를 반응을 보였다. 그리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의 보좌관으로 진력을 다해 뛰었던 시간들은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되었다.

국회 안에서 본 중앙정치는 매일 매일이 박진감 넘치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공간이기도 했다. 말도 되지 않는 보수정당의 행태에 맞서 진보정치의 일면을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과정은 지난한 인내는 물론이려니와 그들보다 더 나은 프레임을 만들고 더 잘 설득하는 능력까지도 요구했다. 치열한 정치적 다툼 속에서 이슈의 선점과 효과적인 언론대응의 중요성을 실감하기도 했다. 누가 언제 어떻게 말을 던지고 판을 벌이는지가 일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언론에 알리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과정 하나 하나가 학습의 과정이었고 훈련의 과정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때의 단련이 이후 뉴타운투쟁을 승리로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반면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을 둔 꼬마정당의 한계도 분명했다. 서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법안 하나를 만들려고 해도 법안을 만들고 발의요건을 갖추는 것이 매번 벅찼다. 10명의 국회의원이 발의에 동의를 해주어야 하는데, 타 정당 의원들을 하나씩 만나 법안의 취지를 설명하고 서명을 받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정국현안과 이슈에 한정된 인력과 자원으로 발 빠르게 대응한다는 건 어려운 문제였다. 소수정당 그것도 진보정당의 국회의원 보좌관은 이 모든 것을 감수해야만 했다.

갈등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현안에 파묻히다보니 장기적으로 고민하고 전망을 세우면서 바닥부터 차근차근히 다져나가야 할 일들에는 아예 손도 댈 수 없었다.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풀뿌리 속에서 정치활동을 해왔던 입장에서는 자괴감이 들기도 할 정도였다. 현안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현안에 끌려 다니는 것이 진보정치의 한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까지도 들기 시작했다.
 
2010년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난 후 약 한 달이 지난 7월 중순, 의정부로 돌아왔다. 뜨거운 여름이 막 시작되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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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집 옥상에서 내려다본 꽃동네 마을 전경

 
뉴타운, 이건 시작하면 늪이 되겠구나
 
의정부로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도 않은 7월말, 민생연대 의정부지부장이자 진보신당 의정부당원협의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었고 이후 뉴타운 반대투쟁위원회 정책국장을 역임하게 된 이의환 국장이 찾아왔다. 이의환 국장은 지역에서 주민들의 민생사업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사람이다. 같은 당에 속해 있으면서 함께 많은 민생사업들을 했었다. 특히 이의환 국장은 2004년에는 송산동 임대아파트 임대료 인하운동에 앞장서서 서민주거권 쟁취 투쟁을 함께 했었다. 2005년 10월에는 송산동 지역 기초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비록 당선을 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투쟁했던 지역주민들의 지지로 진보정당후보로는 보기 드물게 16.5%를 획득하기도 했다. 이의환 국장이 지역주민들에게 얼마나 신뢰를 받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 후 이의환 국장은 전국적으로 활동범위를 넓혀 임대아파트 전국회의 정책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서민주거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자타가 인정해주는 주택정책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당분간 쉬면서 이후 행보를 고민하려던 참에 이의환 국장의 방문은 그래서 또다시 쉬지 못할 무엇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예감케 했다. 역시 이의환 국장은 큰 문제거리를 하나 들고 왔다. 그것은 바로 의정부 뉴타운이었다. 의정부 뉴타운은 2006년 11월에 경기도 뉴타운 예정지구로 금의지구가 지정되고 다음해 가능지구가 뉴타운지구로 지정되었다. 금의지구와 가능지구의 뉴타운계획은 약 10개 동 70만여 평의 대규모 주택지역을 전면 철거하고 새롭게 아파트단지로 개발하겠다는 의정부시 최대의 개발사업이었다. 당시는 2006년 지구로 지정된 이후 4년 만에 본격적인 개발의 첫 단추가 꿰어지던 시기였다.
 
이의환 국장은 당시 의정부뉴타운사업 초기에 개입하게 되었던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2006년 12월경 구리에서 뉴타운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당시 의정부가 뉴타운 지구로 지정되던 때였죠. 경기북부지역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어요. 그 때 용산에서 재개발 정비업체를 운영하던 백준 당원의 강의가 인상적이었어요. ‘뉴타운 재개발 싸움은 초기에 대응해야지 나중에 결정고시 떨어지고 집이 철거를 앞두면 몸만 힘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지치게 될 뿐!’이라고 강조한 것이 두고두고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죠.”
그 날 교육이후 그는 틈틈이 의정부 뉴타운 사업의 진척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되었다. 동시에 의정부 시청에 뉴타운 진행과정을 알려주는 문자서비스를 신청해 놓아 실시간으로 사업진행과정을 알고 있었다.
 
그가 나를 찾아온 즈음도 의정부시가 뉴타운 재정비 촉진계획을 입안하고 그 계획을 시민들에게 열람하라고 문자를 받은 직후였다. 이의환 국장은 “위원장님 집도 뉴타운 해당지역인데 가만히 앉아서 당할 거냐? 일단 한 번 시청에 가서 계획이라도 살펴보자.”며 나를 재촉했다. 그리고 “의정부 뉴타운 문제는 가능동과 금오동 지역 대부분의 주민들의 생존권, 주거권이 달려 있는 문제다.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서민들의 주거권을 빼앗는 거라면 대응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당연한 말이었다. 게다가 열정 가득한 이의환 국장의 눈빛은 뉴타운만큼은 반드시 대응해야 하는 중대한 지역문제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속에서는 갈등이 일고 있었다. 일종의 불안감이라고 할까.

의정부에서 그동안 이의환 국장과 내가 했던 민생사업들은 적지 않았다. 지역의 분위기나 주민들의 생활 등에 대해서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해왔던 활동들은 대부분 단순한 서민생존권 지원사업들이었다. 예를 들어 주공 임대아파트 임대료 부당인상 반대라던가 임대료 인하운동, 신용불량자들을 위한 파산상담 사업, 노동자들의 체불임금해결이나 근로조건 개선 또는 경륜장 반대운동 등이었다. 물론 이러한 사업들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뉴타운 문제는 지금까지의 문제들과는 그 규모와 질이 달랐다.
 
당시 지역에서는 뉴타운을 찬성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팽배했었다. 낙후된 의정부지역에 뉴타운이 들어서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개발에 대한 환상도 많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과연 뉴타운의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또 다른 측면에서 걱정되는 것은 전문성이었다. 그동안 해왔던 민생사업은 어찌 보면 단순한 현안대응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재개발이나 뉴타운 문제는 정책의 문제였고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와 수많은 법률들이 복잡다단하게 깔려 있었다. 전문성도 없이 과연 어떻게 이 문제를 거론할 수 있을까? 게다가 찬반 양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사안이었다. 어찌되었든 정치인으로서 이 문제에 뛰어든다면 어느 한 쪽이 완전히 등을 돌릴 각오를 해야 할 판이었다. 더 큰 문제는 실제 이 문제가 언제 해결될지 그 끝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장래를 속절없이 저당 잡혀가며 얼마나 끈질기게 이어나갈 수 있을지 선뜻 자신하기 어려웠다. 생각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느낌은 이것이었다. ‘이건 시작하면 늪이 되겠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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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8월 말 진보신당 의정부당협에서 뉴타운교육을 받고 있는 당원들과 이진형위원장, 노재경 총무


부실 그 자체였던 뉴타운 추진계획서
 
일단 주변부터 돌아보며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먼저 평소에 알고 지내던 동네 주민들을 찾았다. 뉴타운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았다. 역시 찬성론자들이 많았다. 뉴타운의 실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그저 좋다는 이야기만 들어왔던 주민들이 찬성쪽에 기울어져 있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조합추진에 적극적이었던 사람들이 유리한 자료만을 근거로 주민들을 설득해왔고 동네에서 영향력 있는 분들을 조합추진위원회로 끌어들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금의지구 뉴타운반대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이진형 위원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에 2009년도 5월인가 금의2구역 추진위 사무국장이 나한테 10구역 현황도도 주고 10구역 추진위원장을 나중에 맡아달라고 할 정도였어, 그 후엔 한양빌라 5구역 추진위원장이 금의5구역 뉴타운 추진위 준비위원이 되어달라고 권해서 나하고 노인회장 둘이 추진위 준비위원으로 들어갔지.”
 
처음엔 나도 뉴타운을 중단시키거나 전면백지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못했다. 정부차원에서 진행되는 사업인데다가 주민들 상당수도 찬성하는 사업을 막연하게 찬성 또는 반대라는 방침부터 정해놓고 일을 벌이는 것은 가당치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주민들을 만나면서 이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비록 찬성의 분위기가 많다고는 하나 주민들 역시도 찬성의 이유가 꽤나 막연했기 때문이다.
 
의정부시청 뉴타운과를 방문했다. 예상은 했지만 꽤나 완강한 벽에 부닥쳤다. 이의환 국장과 함께 방문했던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 동안 공무원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담당 공무원은 대뜸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다. “진보신당 의정부 당협에서 왔다”고 하니 경계의 눈빛이 역력했다. 설왕설래한 후에야 자료를 보여주는데 공람자료가 1천 쪽에 달하는 책 두 권에 달했다. 우리는 이 자료를 복사해달라고 했다. 돌아온 답변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자료를 복사해줄 수 없다. 열람만 하라’는 뉴타운 사업과장과 한참을 옥신각신 했다.
 
오랜 지역활동을 하면서 제대로 된 행정정보의 확보가 모든 투쟁의 시작이며 일의 성패가 달린 것임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행정관청에는 최대한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 하는 관행이 있다. 으레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제 미묘한 자료들의 공개는 꺼리는 것이다. 그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뉴타운 사업과장은 “의정부시의 정보를 일반인에게 함부로 공개할 수 없으니 열람만 하고 가라”면서 자료공개를 거부했다. 이의환 국장은 “의정부 시민의 혈세로 만든 자료면 그게 시민의 것 아니냐? 시민이 주인이고 주인이 보자는데 공개해야 해잖는가?”라며 언성을 높이고 책상을 두드렸다. 사전에 역할분담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의환 국장이 격렬하게 항의를 하면 나는 차분하게 설득을 했다. “자료가 너무 전문적이라 그냥 봐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차분하게 살펴보고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필요한 부분이라도 복사해 달라.” 결국 2시간여의 실랑이 끝에 뉴타운 사업과장으로 부터 필요한 목차부분을 지정하면 복사해서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3일후 우리는 뉴타운 계획 중 주민들의 삶과 연관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행정정보공개를 요청해 받아냈다. 이 자료는 우리가 이후 뉴타운반대투쟁을 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자료를 받은 후 우리는 꼼꼼하게 검토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뭔가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되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뉴타운계획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 대한 면밀한 실태조사가 우선이어야 한다. 그러나 ‘금의지구 도시정비 계획서’는 실태조사 자체가 엉망이었다. 전체 인구 중 세입자 수, 해당지역 주택의 노후정도, 주민들의 개발욕구 등을 조사하는데 있어서 주민들의 응답률은 형편없이 낮았고 주거대책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애초 뉴타운 계획의 취지는 주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서 보다 살기 좋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부실한 조사에 근거한 뉴타운 계획서를 보면서 뉴타운이 이렇게 추진되다간 커다란 문제들이 발생하겠구나, 잘못하다간 의정부에서 제2, 제3의 용산사태가 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도대체 실태조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꽃동네 마을 청년회 모임을 찾아가 주민들에게 일일이 의정부시에서 뉴타운 계획 초기에 주민들에게 실태조사나 설문지 응답을 한 적이 있는지, 마을에서 주거관련 실태조사를 한 것을 본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참담했다. 실태조사는커녕 여론조사조차 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들 했다.
 
이제 뉴타운 대응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이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늪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뉴타운은 단지 개발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사업은 지역에서 오랜 시간 마음 붙이고 삶을 영위했던 주민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위험을 간직한 것이었다. 이건 나 한 사람의 정치적 득실, 성과를 따지면서 접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내 자신의 삶의 문제고 내가 살아가는 동네의 문제였다. 물론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도 눈 감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아침에 대규모로 주거권을 박탈당할지 모르는 사안에 수많은 의정부 시민들을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내던져 놓을 수도 없었다. 더구나 그동안 내 삶의 지향으로 삼아왔던 진보정치는 이런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내 앞에는 늪으로 들어가는 길만이 놓여 있었다.
 

싸움이 시작되다

사업계획서에 드러난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뉴타운을 바로 알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당시 중앙당에는 서울시에서 뉴타운 관련 전문역량을 갖춘 주요 활동가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상철 서울시당 정책국장과 박학룡 민생실장 등의 소개로 당원이었던 ‘나눔과 미래’ 이주원 사무국장을 소개받아 당협부터 교육을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살고 있는 꽃동네에서 2005년경 아내 최혜영과 함께 마을진입로, 통학로 확보, 공원확보 투쟁을 하며 인연을 맺은 주민 이진형위원장과 노재경 총무에게도 교육을 받아보자고 권했다. 이진형 위원장은 의정부시자유총연맹 의정부동분회협의회장, 의정부경찰서 전의경자 문위원회 부위원장 등의 직책 맡고 있는 분이다. 선대부터 500년간 꽃동네에서 살아왔고 전통방식의 국수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동네에서 신망이 높은 주민대표였다. 노재경 총무 역시 개인택시기사를 하고 있는 꽃동네 토박이로 마을 청년회 회원이었다.
 
8월23일 당시 당협 교육실에서 이주원 국장이 뉴타운에 관한 기본 교육을 했다. “그 교육은 당시 정말 충격이었다. 만일 그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뉴타운 찬성측에 서 있었을 거다.” 이진형 위원장은 이렇게 회고한다.

“처음에 동네에서 추진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었던 때였어, 아 그리고 의정부시청 도시건설국장이 내 동창인데 그놈이 나한테 그러는 거야 ’진형아 너 돈벌었다.’ 그래서 나도 뉴타운이 좋은 건 줄로만 알았지. 그리고 10구역 추진위 준비위원도 하고 있었어 . 그런데 목영대한테 전화가 온 거야. 뉴타운 교육받아보자고 그래서 하금오(꽃동네) 청년회원들하고 10명이 교육받으러 가자고 했는데 실제로 간 건 나하고 노재경 뿐이었지. 우리는 뉴타운 하면 돈버는 줄 알았는데 일단 교육 한번 가보자 했어.”

“그런데 그날 완전히 충격이었어. 내가 지금 꽃동네에서 산 밑에 집 하나하고 전통국수공장 하나 있는데 154평이다. 당시 시세가 평당 600까지 올라갔어. 재산 시세가 10억 가까이 되는데 뉴타운 하면 5-6억으로 떨어지고 거기다가 또 반토막 난다는 거야. 그게 엄청 충격이었어. 뒤집어 지는 거지. 노재경은 더했지. 낡은 다가구 건물 3층짜리를 갖고 있는데 세입자가 대여섯 명이야. 세입자들 보상해주고 나면 남는 건 더 적어 그러니까 충격이었지.”

“처음엔 신기루 같이 돈 번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잘못하면 쪽박 찬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뒷통수를 맞은 거지. 생벼락 맞은 거야. 주민들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내 재산 뺐기는 거고. 내가 국수공장 하기 전에 직업이 항측이어서(항공기측량) 지적을 좀 알아. 그래서 감이 왔지. 그랬는데 이주원이 얘기 딱 듣고 나니까 그냥 앉아 있어도 내 재산이 세상에 시세도 아니고 공시지가의 절반으로 떨어진다는데 내가 가만있을 수가 있겠어? 가뜩이나 대출받아서 공장지어 맨날 은행이자 내느라 허덕이고 있는데.. 그래서 나같은 보수꼴통이 빨갱이 목영대랑 손잡게 된 거지 허허. 알잖아 그 때 꽃동네 노인네들이 보수쪽 색채가 강했어. 그래서 처음에 동네 주민들이 호응을 안 해줬어, 목영대가 빨갱이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나는 보수꼴통인데 빨갱이하고 한번 손잡아 보겠습니다라고 보란 듯이 나섰지.”
 
 

[ 목영대 (노동당 의정부 전국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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