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이슈 / 논평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170528_권문석.png


[논평]

한 시대의 사회운동가 권문석을 추모하며

- 5 28일 故 권문석 4주기 추모제에 부쳐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는 망각과 기억에 저항하고 또 이를 위해 분투합니다. 이 일이 쉬운 일도 아니고 의지대로 되는 것도 아닌 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애쓰는 것은 조숙했던 것과 시대착오적이었던 것을 제자리에 놓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은 너무 앞서갔고 또 어떤 것은 한참 뒤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시대의 과제를 찾아내려 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행동을 시대의 한가운데에 놓고자 했습니다. 이런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었고, 오늘 우리가 추모하고자 하는 사회운동가 권문석도 수많은 우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다만 그는 너무 조숙했기에 과제를 던져놓고 우리 곁을 떠났을 뿐입니다.

 

작년 가을과 겨울, 광장에 켜진 촛불 속에서 우리가 '민주주의는 거리에 있다'는 말을 실감했을 때 그리고 이를 주요한 방향으로 추구하고자 했을 때 권문석이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몇 장 남지 않은 그의 사진 가운데 한 장에서 우리는 깃발을 들고 거리에 앉아 있는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봅니다. 이는 여전히 현실적이면서도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어떤 흐름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부박한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거리에 있고, 바뀌어야 할 것은 우리 모두의 삶이라는 것,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날카로운 비판의 감성과 충만한 행동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 말입니다.

 

학생운동가로서 성년의 삶을 시작한 권문석이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했을 때 이른바 한국의 진보 정치 운동은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진보 정치 운동의 짧은 봄날이 지나가고 있던 당시 주류였던 사람들은 과거의 이념과 조직을 더욱 강화하는 것을 돌파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권문석을 포함한 우리는 그런 식으로는 여름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수가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일부 조직 노동자에 기초한 개별 국가 단위의 복지국가는 비현실적인 방향이라고 말입니다. 게다가 개인과 집단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다양한 요구는 이미 분출하여 우리의 거리를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두어, 단번에 떠오른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주체의 형성 및 그러한 주체를 형성할 수 있는 보편적 의제를 제출하고자 했습니다. 그 가운데 중심적인 것이 기본소득입니다. 최근 불평등과 일자리 부족 등의 이유로 기본소득이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훨씬 심원한 근거와 목표가 있습니다.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공유에 기초한 배당의 권리이자 모두가 자기 삶을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근거입니다. 권문석은 기본소득을 위해 그리고 기본소득이 새로운 운동과 정치의 의제가 되도록 하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기본소득 운동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과한 말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말해야 할 것은 그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 것인가입니다.

 

'이성의 승리는 이성적인 사람들의 승리'라는 말처럼 어떤 의제가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목소리를 형성하고 통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사회운동가 권문석은 알바노조 대변인으로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들리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 정당한 활동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던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주체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처지를 개선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부문이 그렇게 하도록, 이를 통해 공통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마지막 직함은 알바노조 대변인이었습니다.

 

권문석의 죽음이 끝이 아닌 것은 그가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저 미완의 과제가 남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조숙함과 시대착오성은 현재에도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제자리를 찾기 위해 분투합니다. 오늘날 그러한 분투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요청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년 가을에서 올봄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거리의 정치와 의회의 정치 모두의 완강함을 보았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고, 또 그만큼 우리는 뒤로 갔으며, 그리고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권문석은 어떤 말을 했을까? 아마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새로운 길을 가라고 말했을지 모릅니다. 물론 그는 우물쭈물 제대로 들리지도 않게 말했을지 모릅니다.

 

들리지 않을 듯 들리고,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게 그와 우리가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고개를 두 번 숙이지 못합니다. 죽은 자를 애도할 수 없는 우리는 어쩌면 섬망(譫妄)을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그의 때 이른 죽음 때문이며, 그의 조숙함 때문이며, 우리 자신의 조숙함과 시대착오성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의 죽음과 우리의 삶을, 시대의 흐름을 제자리에 놓으려는 우리의 분투가 끝날 때까지 그 환각은 지속될 것입니다. 그가 우리와 함께 있다는 환각, 그와 함께 나아간다는 환각 말입니다.

 

(2017.5.28., 평등 생태 평화를 지향하는 노동당 대변인 안효상)

서비스 선택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1. 5월1일 하루가 아닌 일상을 노동자로

    Date2021.05.01 Category논평&성명 By노동당
    Read More
  2. 산업재해 사망자 감축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Date2021.04.28 Category논평&성명 By노동당
    Read More
  3. 군 가산점 제도를 당리당략에 이용하지 마라

    Date2021.04.21 Category논평&성명 By노동당
    Read More
  4. 10기 46차 상임집행위원회 현린 대표 모두 발언 (2021.4.13.)

    Date2021.04.15 Category브리핑 By노동당
    Read More
  5. 일본 정부의 핵 오염수 해양방류 결정을 강력 규탄한다

    Date2021.04.14 Category논평&성명 By노동당
    Read More
  6. 최저임금의 과감한 인상이 필요하다.

    Date2021.04.02 Category논평&성명 By노동당
    Read More
  7. 10기 44차 상임집행위원회 나도원 부대표 모두 발언 (2021.03.30.)

    Date2021.04.01 Category브리핑 By노동당
    Read More
  8. 미국 외교수장 토니 블링컨의 위험한 발언들

    Date2021.03.23 Category논평&성명 By노동당
    Read More
  9. No Image

    노동당 광주시당, 불법 행위 광주 시내버스 '지원 중단'촉구

    Date2021.03.17 Category관련 뉴스 By노동당
    Read More
  10. 민주노총-노동당 집행부 간담회 진행

    Date2021.03.17 Category브리핑 By노동당
    Read More
  11. 3·11 후쿠시마 핵폭발 10주년을 맞이하여

    Date2021.03.11 Category논평&성명 By노동당
    Read More
  12. 10기 41차 상임집행위원회 나도원 부대표 모두 발언(2021.03.09.)

    Date2021.03.10 Category브리핑 By노동당
    Read More
  13. 아직도 우리에게 빵과 장미는 충분하지 않다

    Date2021.03.06 Category논평&성명 By노동당
    Read More
  14. 미얀마 민중들의 민주화 투쟁에 연대와 찬사의 마음을 전한다.

    Date2021.03.04 Category논평&성명 By노동당
    Read More
  15. 10기 40차 상임집행위원회 현린 대표 모두발언

    Date2021.03.03 Category브리핑 By노동당
    Read More
  16. 또 다시 신규핵발전소 백지화 방침을 어긴 문재인 정부

    Date2021.02.23 Category논평&성명 By노동당
    Read More
  17. 투사의 삶을 돌아보며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Date2021.02.15 Category논평&성명 By노동당
    Read More
  18. 10기 36차 상임집행위원회 현린 대표 모두발언

    Date2021.01.28 Category브리핑 By노동당
    Read More
  19. 택배노동자의 죽음의 행렬을 멈추어야 한다.

    Date2021.01.22 Category논평&성명 By노동당
    Read More
  20. 노동당 - 노동사회과학연구소 학술정책공동연구협약식 체결

    Date2021.01.20 Category브리핑 By노동당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51 Next
/ 451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