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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이제 노동자·시민의 빨간 깃발이 필요하다

- 이명박근혜로 퇴행한 촛불 정부

 

삼성그룹이 향후 3년간 18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소리가 전국을 뒤덮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국정농단 대법원 상고심 재판을 앞둔 이재용 부회장을 연이어 면담하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요청한 이후 이뤄진 일이다. 이윤 창출을 위한 기업의 투자에 대가로 지불한 공익은 돈으로 계산하기 어렵다. 경제 정의와 불평등 해소라는 촛불 시민항쟁의 염원이 무너지고 감세와 규제 완화라는 이명박근혜시대의 익숙한 경제 논리로 퇴행하고 말았다.

 

재벌들의 투자 계획이 발표되는 과정은 역대 정부를 거치며 하나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집권 초반기 대통령이 재벌총수들과 청와대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재벌기업들의 투자와 고용 계획이 발표되는 식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에게 투자를 구걸하는 형식을 달리했을 뿐 본질은 같다. 이런 방식은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째는 영리 기업의 투자 판단은 미래의 수익성이지 애국심이나 공익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장 외부에 있는 정부가 자본의 투자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규제 권한을 이용해 자본의 수익성을 맞춰주어야만 했다. 이것은 항상 공익을 해치는 규제 완화로 이뤄졌고, 이 규제 완화의 총체적 결과가 재벌의 경제력에 국민경제가 인질로 잡힌 현재 상태인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그렇게 해서 재벌들이 약속한 투자를 이행했는지도 불명확하거니와 설령 그렇다고 한들 생산과 고용, 성장과 가계소득의 탈동조화를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방식의 투자와 성장으로는 오늘 문재인 정부가 대면하고 있는 일자리와 소득 불평등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당은 문재인 정부의 노골적인 정책 기조 전환이 정권 자체의 내부 성찰로 재고될 여지가 거의 없다고 본다. 하지만 자동차의 발전을 마차와 같은 속도에 맞췄다는 대통령의 빨간 깃발론에 따라 임박했거나 자본의 요구가 거세질 두 가지 규제 완화의 위험성은 환기하고자 한다. 대통령의 빨간 깃발론은 한반도 평화의 지도자답지 않은 교묘한 색깔론 선동이기도 하고 진실을 오도하고 있기도 하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명박에게는 규제가 뽑아야 할 전봇대’, 박근혜에게는 적출해야 할 암 덩어리였다. 문재인 정부의 빨간 깃발론에 따라 현재 두 가지 위험성이 임박했다.

 

인터넷은행을 둘러싼 은산분리 완화 요구는 기본적으로 보험, 캐피탈, 신용카드사 등 소위 제2금융권을 이미 지배하고 있는 산업 재벌들이 인터넷 금융 산업 발전을 명분으로 은행 산업마저 지배하려는 이해의 산물이다. 여기에 은퇴 이후 좋은 일자리 만들기에 여념 없는 금융 관료들의 이해가 더해졌다. 은산분리 규제 때문에 인터넷 은행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논리는 이미 진행된 투자를 통해 거짓으로 드러났지만, 모든 필요한 투자가 민간기업으로부터만 나와야 한다는 발상도 이해하기 어렵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칸막이를 허문 규제 완화에 기인한다는 교훈은 한국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 문제에도 타당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약값 책정 자율화 요구와 김동연 부총리의 긍정 검토 답변도 위험천만하다. 약값은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제약사 사이의 공적 조율을 거쳐 이뤄지고 있다. 이 규제를 허물고 약값을 자율화하면 미국의 메디케어(Medicare) 꼴이 날 것이다. 공적 규제 없이 제약업체의 자율에 맡겨져 있는 메디케어 적용 약값이 지난 5년 동안 물가상승률의 10배에 이르렀다는 통계가 있다.

 

마차와 자동차가 함께 도로를 달리던 영국에서 빨간 깃발은 오늘날의 교통신호 역할을 했다. 교통신호를 위반하고 마구 달려온 재벌 대기업들에 딱지를 발부해 노동자, 중소기업, 자영업자들도 함께 달릴 수 있는 도로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촛불의 염원이었다. 노동당은 이 염원을 배신한 문재인 정부에서 실패한 참여정부의 데자뷔를 본다.

 

201889

노동당 정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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