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약속”
《엄마와 아들, 세상에 서다》의 만화가 김재수
옛 진보신당 시절에 문화예술위원회 활동을 하며 만난 김재수 당원은 처음 볼 때부터 어딘지 낯이 익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기를 얻고 있던 미국드라마 《로스트》에서 헐리 역을 맡은 배우 조지 가르시아(Jorge Garcia)와 헤어스타일과 성품에 비슷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과 관심사가 통했던 터라 좋은 시간을 보냈고, 훗날 실물보다 훨씬 미화된(하지만 유니폼 수준의 복장은 그대로인) 나도원 캐리커처를 선물받기도 했다.
그런데 ‘미드’에 등장할 법한 이국적인 외모의 소유자인 김재수 당원은 사실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모두 보낸 자칭 ‘촌사람’이다. 아버지는 평범한 농부였고, 어머니는 근처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였다.
책 없는 집에서 자란 소년, 만화를 만나다
아직 자기 집에 TV도 없었던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를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려운 형편으로 부모님께서 사주시는 동화책이나 소설책은 거의 보지 못한 김재수 어린이는 친구가 보여준 만화책 《드래곤볼》에 푹 빠졌다. 집에 책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물려받은 교과서만 읽은 탓에 중학교 1학년 때까진 성적이 좋았지만, 만화책에 빠지면서부터 교과서들과는 작별을 고하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을 탐독했고, 국어와 국사, 사회를 공부했다. 돌이켜보니 만화를 그릴 때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골라 읽은 셈이다. 이른바 ‘자박적인 특성화 교육’이었다.
자고로 청소년기 학창시절에 선생님과 부모님을 통하여 전수되는 훌륭한 격언이 “오락실과 만화책을 멀리하라”이다. 그러나 학생 김재수는 그 모두와 가까이하였다. 보고 싶은 만화책 살 돈을 구하기 위하여, 그리고 선생님과 부모님의 고언을 멀리하고 오락실을 찾은 순진한 학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그들로부터 100원씩을 갈취하거나, 부모님께는 만고의 학생재정운동방식인 “문제집 살 테니 돈을 주오”라는 거짓말을 적극 활용했다. 나아가 그렇게 구한 만화책을 친구들에게 100원씩 받고 빌려주는 도서대여 사업까지 벌여, 또 다시 만화책 살 돈을 재창출했다. 일찍이 ‘자급자족 경제시스템’을 완성한 것이다.
이 자립적인 학생에게는 모범적인 면도 있었다. 만화책뿐만 아니라 만화작업에 필요한 원고용지, 잉크, 스크린톤, 펜촉 등의 재료비에도 재정을 쏟아부어야 했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렇다고 담배를 멀리한 것은 아니다. 친구들의 담배를 훔쳐 까치담배를 팔기도 했다니까. 교과서 대신 죄다 만화책뿐인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다니다보니 성적은 바닥이었지만, 수업시간에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을 탐독했고, 국어와 국사 그리고 사회도 공부했다. 돌이켜보니 만화를 그릴 때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골라 읽은 셈이다. 이른바 ‘자발적인 특성화 교육’이었다.
만화의 길 대신 공장으로
그러나 진로가 순탄할 리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만화가 문하생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당시 사회분위기는 대학진학을 요구했다. 만화애니메이션 학과가 있는 마산의 2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정원이 30명인 학과였으나,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되자 절반이 그만두었다. 2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남아있는 인원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졸업을 앞두고 전시회를 준비할 무렵에 남아있던 학생들은 여섯 명에 불과했다. 그들마저도 모두 게임그래픽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출판․만화 업계의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미래를 담보할 수 없었다. 벽화를 그려 그림으로 처음 돈을 벌어본 경험을 뒤로 하고, 졸업생 김재수는 군대에 가야 했다. 많은 청년들이 겪어온 이 경로는,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는 교육에서 누구나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 전환해야 할 시점을 우리가 계속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준다.
먹고 살기 위해 들어간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예기치 않게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임금협상 파업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몸자보에 쓸 그림을 비밀리에 그려주었다.
사회인 김재수는 병역을 마치고 만화를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했다. 일단 먹고 살기 위하여 창원에 있는 자동차 부품 공장에 들어가 일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이곳에서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파업이었다. 파업에 동참한 것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협상 파업을 할 때에 몸자보에 쓸 그림을 일일이 그려주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라 관리자 눈에 띄면 바로 해고당하기 때문에 비밀리에 그려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림에 마음을 둔 이상 다른 일이 적성에 맞을 리 없었다. 만화 대신 게임그래픽 디자인을 하고자 서울로 상경했으나 돌아온 답은 좌절과 귀향이었다. 만화동호회에 있던 형들로부터 냉정한 평가를 받았고, 스스로 자신의 실력과 재능에도 회의를 품었다. 몇 달 동안 공부하다가 디자인에는 재능이 없는 것을 깨닫고 마산으로 돌아와 오토바이 공장에 들어가 일했다. 그곳에서 오른 손을 다쳐 그 일마저 그만두어야 했다.
반전. 그러나 여전히 좁고 어려운 길
“뭘 해도 안 되는 시기였어요. 김해시에서 개최한 만화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여기에서도 성적을 내지 못하면 만화는 과감히 포기하리라 결심했는데, 다행이 대상을 수상하고 그 상금으로 상경했습니다. 대학선배 소개로 플래시애니메이션, 삽화 등을 그리는 회사에 취업했죠. 순간순간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만화를 그리고 싶은 욕구가 강해 끈질기게 매달려 지금까지 이어져온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만화․웹툰 공모전에 출품하여 수상하기도 한 만화가 김재수는 조아라 작가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디자인&툰 전시회를 기획하고 지금껏 3차례의 전시를 열었다. <레디앙>과 노동당에 만평을 기고하고, 프리랜서로 플래시애니메이션과 삽화 일도 한다. 우리는 남의 잘못과 부족함을 밝혀내는 일에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보니 실수할 기회가 거의 없다. 사실 그 잘못과 부족함들 중 많은 것들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인정의 대상이 아닐까. 그래서 두려워 말고 끝까지 가봐야 한다고들 말하는 것이다.
한국 문화예술 산업구조와 인식의 낙후로 예술노동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만화도 예외는 아니다. 만화를 제작하고도 돈을 받지 못했고, 보상은 집요한 요구와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물론 한국 문화예술 산업구조와 인식의 낙후로 인하여 많은 예술노동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비단 특정 업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비정규불안정노동문제 그리고 청년노동문제와도 겹쳐 있다. 만화라고 예외는 아니다. 김재수 작가도 외주 일을 받아 애니메이션과 삽화를 작업해 놓고도 회사가 부도나거나 사장이 도망가서 아무것도 받지 못한 적이 있다. 지역에서 기획사를 통하여 제품소개 만화를 제작했을 때에는 1년이 지나도록 돈을 주지 않았다. 보상은 집요한 요구와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용산참사를 본 회사원, 진보신당의 당원이 되다
조그마한 그래픽 회사에 다니고 있었을 때다. 헤드셋을 끼고 아프리카TV를 통하여 스포츠를 보며 일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칼라TV에서 용산참사를 접했다. 사람이 불에 타죽어 가는 장면을 보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모니터를 보면서 하루 종일 울었다.
“사회 안팎에서 계속해서 터지는 일을 보며 내가 정말 세상을 무관심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다른 사람의 삶은 관심도 없다면서 타인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지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뭐라도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정치 기득권에 있는 사람들이 제일 바라지 않는 것, 그건 나 같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 가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 기득권에 있는 사람들이 제일 바라지 않는 것, 그건 나 같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 가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나라당이 여당이라는 것 말고 다른 정당들에는 관심도 없던 회사원 김재수는 이렇게 정당가입을 결심한다. 마침 학창시절부터 제일 친하게 지낸 친구가 정당활동을 한다고 들은 바 있어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자신의 의지를 밝히니 그 친구는 깜짝 놀랐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친구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겠다고 하니 당황스러워 했다. 하지만 친구는 현명했다. 정당가입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념과 가치가 맞는 정당을 선택하여 공부하고 활동하는 거라면서, “그럼 내가 민주당에 들어가야 하느냐”고 묻자 고민 끝에 진보신당을 추천해주었다. 회사원 김재수는 바로 진보신당에 입당했다. 2009년 3월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민주노동당 당원이었죠.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물었죠. 진보신당에 왜 들어가라고 했냐니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놈이 생각이 바뀐 걸 보면 보통이 아니다, 그러면 진보좌파정당에 들어가는 게 맞을 거 같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덧붙여 좌파는 끊임없이 공부하며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체 게바라 평전을 추천해주기에 제일 먼저 읽었죠. 사실 저는 이때까지도 진보, 보수, 우파, 좌파 단어 뜻도 몰랐습니다. 하나하나 당원들에게 물어보고 알아갔죠.”
<엄마와 아들, 세상에 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김재수 당원은 노동당(진보신당)에 입당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자신이 존재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노동당을 통하여 좋은 당원들을 만나 삶이 변했다고 한다. 쑥스럽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가 만난 좋은 당원들 중에는 故 박은지 부대표도 있을 것이다. 박은지 부대표는 생전에 육아일기를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올리곤 했는데, 김재수 당원이 만화로 그리고 싶다고 하니 꼭 그렇게 해달라고 말했다 한다. 제목과 캐릭터 등도 그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박은지 부대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림을 그릴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그동안 그렸던 것을 모두 지우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박은지 부대표의 아들) 은혁이가 엄마 이야기 계속 그려달라고 하기에 차마 지울 수가 없었죠. 그 이전에 웹툰을 그려 연재할 때에도 은혁이가 꼬박꼬박 챙겨보니까 빨리 업로드를 해달라는 재촉도 있었죠.”
이처럼 《엄마와 아들, 세상에 서다》는 약속의 산물이다. 또한 작가 김재수의 세 가지 꿈, 그러니까 첫째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벌자, 둘째 평생 그림을 그리면서 살자, 셋째 내 이름으로 만화책을 출간해보자 중 하나를 이루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김재수 당원이 노동당을 아끼는 마음도 컸다. 《미래에서 온 편지》가 제대로 도착하지 않을 때에는 택배비가 아까울 거 같아 중앙당에 갈 일 있으면 그때 가서 받으면 되니 부치지 말라고 했을 정도다. 당 재정사업으로 김을 팔 때에는 무리해서 구입한 덕에 추석선물로 다 주고도 많이 남아, 라면 먹을 때에 김을 싸서 먹기까지 했다. 그때에는 왜 이랬나 싶기도 하다면서….
질문과 약속
“제가 만든 이야기는 재미도 없고, 이야기에 어울리는 그림체도 아니고. 그래도 요즘은 스토리 공부와 연출에 더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만화가 재밌어지고 있다고 하기에 기분은 좋더라고요. 그리고 아직 제 그림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 그림체를 만드는 것보다 좀 더 다양한 기법과 그림체로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필요하다 느끼면 저만의 그림체가 나오겠죠.”
그에게 자신의 작품(활동)을 냉정하게 평가해보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답에서 만화가 김재수의 미래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도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에게 했던 첫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각자 해봄직한 질문이다.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5.4월호 숨은문화예술당원찾기
인터뷰 ․ 정리 : 나도원 문화예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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