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_전국위원] 당명개정 등에 관한 입장
부산 전국위원 정유진입니다. 지난 6일 전국위원회 다녀온 이후 보고를 드렸어야 했는데, 많이 늦어버렸습니다. 아래의 글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당명개정 등과 관련한 저의 입장입니다. 많은 당원분들이 읽어주신다면, 또 동의해주신다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부족하나마 말할 때가 된 것 같아 씁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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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당’의 처음은 장애인 당사자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중증장애인들의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그들 곁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던 당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평생 타인에게 의존하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나의 ‘존재’도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했습니다. 그 ‘당’ 사람들은 장애는 고치거나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사회가 ‘장애’라고 부르는 특성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들과 함께 하면서 나의 ‘세계’는 장애에서, 곧 빈곤으로, 빈곤은 젠더문제로, 또 곧 반자본주의로 나아갔습니다. 확장되는 세계 속에서 ‘정당’이 중요함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됐습니다. 시민사회의 운동이 정치 운동과 만나지 않으면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 새롭게 사회를 구성하는 일은 실현하기 어렵겠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나의 ‘당’은 통합, 재창당 등으로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고, 현재 시점 당은 당명개정을 포함한 당의 전망을 논의 중입니다.
‘나’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나’를 인식하는 것이 곧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고, ‘세계’는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와 연결되는 다른 ‘나’들로 구성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일정한 속도로 걸음을 걷다가 갑자기 빨라지거나 느려져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면 당황합니다. 늘 하던 대로 하려는 관성 탓입니다. 이때 발을 헛디디거나 넘어지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하는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를 ‘하나의 상태에만 정체되어 있지 말라’는 메시지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당대표단 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올해 초 부산 유세에서 나는 당명개정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말했습니다. ‘언젠가 당명이 바뀔지도 모르는 상태’로 어떻게 당 활동을 하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세과정과 당선, 이후 대표단이 내어놓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내가 이미 오래 전부터 ‘당명은 바뀔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나의 당은 오로지 ‘이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나는 이미 노동당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3월 30일 전국위원회에서 한 전국위원이 상임집행위원회에 염두하고 있는 당명이 있느냐 물었고,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을 담아낼 수 있는 당명으로 개정하자는 취지 정도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 날 이후 나는 SNS 등에서 ‘기본소득당으로 바꾼다네요’라는 당원들의 댓글을 보고 “제안된 당명은 없고,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을 담아낼 수 있는 당명으로 개정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호/불호로 당명개정 반대라 선언하기보다 왜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나눴으면 한다는 짧은 바람을 전한 이후 ‘지랄도 풍년이네’ 등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후 당대회 준비위원회에서 평가안과 전망이 제출되면서 ‘기본소득당’ 제안을 보게 되었고, 1차적으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SNS에서 내가 했던 일도 있는데다가, 기본소득당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6월 6일 전국위원회에 가기 전까지 나는 입장을 간명하게 정리하지 못했고, 당원들을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는 방식으로 당원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찬성하는 당원도 있고 반대하는 당원도 있었습니다. 기본소득은 지지하지만 당명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반대하지만 당적으로는 지지한다, 당명 꼭 유지할 필요 없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지가 더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새로움을 시도하자는 등의 다양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물론 대표단의 전망토론회 부산편에 참석했고, 전국위원회 전 부산 안건 토론회도 진행했습니다.
그러면서 입장을 담은 글을 제출하는 당원들의 글도 유심히 읽었습니다. 어떤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검토하고 숙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결정한다는 것은 곧 그에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므로. 그 결정을 옳은 결과로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이므로. 더욱 신중해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정유진은 찬성으로 읽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이 건으로 대화 요청을 한 당원은 대표단이 전부여서, 나를 만난 적도 없는 이들이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소식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입장 정리를 빠르게 하라는 독촉으로 여겨졌습니다.
사람은 현재에 존재해야 합니다. 표현이 어색한 것 같지만, 이 문장에 ‘과거의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부정적으로만 판단한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떼어놓을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 과거에도 당대회 이후 집단 탈당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지 몰라) 당명개정을 논해서는 안 된다거나, 기본소득당 되면 민주당 등 다른 당과 차별화시킬 수 없을 것이니 하면 안 된다거나 하는 주장은 지금의 우리를 돕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봐야 했습니다. 나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느냐고 대표단에 질문하고 답을 들으면서, 반대하는 당원들의 글을 읽으면서, 전국위원회에서 각각 5인의 찬반 토론을 들으면서, 당명개정에 힘을 쏟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6월 6일 전국위원회에서 ‘당대회에 당명개정안을 상정하는 안’에 찬성했습니다. 이제는 7월 7일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사회가 강요하는 스펙을 쌓느라 시간을 써도 실업상태에 놓인 20-30대, 터무니없는 노동조건을 내걸어도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절망 속에서도 위험한 일터로 매일 나가야 하는 노동자, 생존을 위한 하루하루가 투쟁의 연속인 중증장애인, 모든 시간을 장애를 가진 자녀를 돌보고 치료하는데 쓰고 있는 장애인 가족 구성원, 남편/부양자의 경제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눈치만 보는 육아/돌봄노동에 지친 여성, 매월 내야 하는 월세가 없어 죽음을 고민하는 이, 아프고 병든 가족을 돌봐야 하는 이, 일하고 싶지만 일 할 수 없는 우리, 쉬고 싶지만 쉴 수 없는 우리에게, 매월 일정한 금액의 소득이 지급된다면?
“기업이 어렵다는 말 그만 하라, 임금 줄 돈은 없으면서 사내유보금 천 조! 우리의 몫 찾아오자!” 우리가 존재하면서 기여해온 사회에 쌓인 부, 그를 재원으로 우리의 몫을 돌려받는다면, 우리는 좀 더 불안하지 않은 채로, 나의 삶의 방식과 내용을 선택하고, 나를 둘러싼 이웃도 살피고, 우리 마을에 배제되는 이들이 없도록 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 에너지를 쏟고, 더 즐거우며, 사회가 지금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돈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고, 돈 때문에 폭력을 견디지 않아도 되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여러 방면에서 받는 차별도 더는 의미가 없어지지 않을까.
기본소득은 자본주의를 유지 혹은 강화시키는 개량주의의 정책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장애어린이와 함께 하는 자원활동을 할 때도, 최저임금 1만원을 이야기할 때도, 여성주의를 이야기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것은 좌파가 할 일이 아니라고.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당장 10만원이 없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빠른 속도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몰리고 있다고! 이들에게 ‘당신이 임금노동할 의사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당신의 가난을 철저히 증명하여 정부에 지원 받으라’는 말을 할 수 있나. 한 번 지급된 기본소득은 갈수록 금액이 늘면 늘었지 철회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재원 마련을 위해 사회 공유부의 범위를 늘려가야만 할 것입니다. 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고, 해야 합니다. 지난 6일 전국위원회에서 당명개정안 상정 반대 토론에서 ‘공유부는 노동자로부터 수탈한 몫’이라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수탈당하지 않도록 하는 투쟁은 물론이고, 수탈당한 몫을 찾아오는 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 일을 우리 당이 하자는 것이고.
당의 전망 및 당명개정 논의가 탈당 여부와 연동하여 이야기되는 것을 매우 우려하고, 같은 뜻을 품고 걸어온 당원들의 마음이 상처 입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운동은 본질적으로 변화입니다. 우리는 늘 위기였고, 변화를 바라지 않았나? 정말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작은 등불 하나 켜 들고 한 발 앞으로 내딛어 보려 합니다. 지금이 그 때인 것 같습니다. 함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기를 원합니다.